“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 완전한 이론에 대한 불완전한 믿음
🕰️ 1927년 10월 27일 오전 8시 55분
📍브뤼셀, 솔베이 과학연구소 앞 정원, 돌계단 아래
하늘은 흐렸다.
그레이 톤의 구름이 저층에 머물러 있었고,
흩뿌리던 비는 어느새 멈췄지만 공기 중엔 아직 물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돌계단 위로 떨어졌던 빗물은 잔디로 스며들며 소리 없이 사라졌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회의장 앞 정원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직 오전 발표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는 회의장의 문턱을 넘기 전,
마치 그 안에서 벌어질 또 하나의 철학적 충돌에 앞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으려는 듯한 얼굴이었다.
왼손에는 단단히 접힌 회의자료 메모장이 들려 있었고,
오른손엔 잿빛 중절모가 들려 있었다.
가을 공기가 그의 흰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양자역학은 통계적으로는 정확하다.
그러나 세계는 단순한 통계 이상의 것일 수밖에 없다.”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이며,
손에 들린 메모장을 열었다.
그 안에는 어젯밤 정리한 짧은 문장이 있었다.
“완전한 이론은 현실의 모든 요소를 설명해야 한다.
양자역학은 그것을 하지 못한다.”
이 단호한 선언은 어쩌면 그 자신조차
정확히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 말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알았다.
지금껏 만난 수많은 ‘완전해 보이는 이론’들 가운데
정말로 완전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곧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박사님, 이른 아침부터 머리를 싸매고 계신 건 여전하시군요.”
막스 보른이었다.
깔끔하게 다린 모직 코트를 입고,
모자를 반쯤 눌러쓴 채 아인슈타인 옆에 섰다.
아인슈타인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내줬다.
“보른, 오늘 발표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도 박사님의 질문을 두려워하면서 말이지요.”
보른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속에는 어제부터 시작된 깊은 불편함이 담겨 있었다.
불확정성, 관측자 효과, 파동함수의 붕괴—
모든 것이 수학적으로는 설명되었지만,
철학적으로는 불완전하고 심지어 모순적이기까지 했다.
“알고 계시겠지만,” 아인슈타인은 낮게 말했다,
“나는 양자역학이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보른은 고개를 끄덕이며 침묵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아직 무엇인가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뜻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그 ‘무엇’이 있다면, 그건 뭘까요?”
“나는 그것을 ‘숨은 변수’라 부릅니다.”
그 순간, 보른의 눈이 가늘어졌다.
“박사님… 그건 비결정론을 부정하는 말이군요.”
“비결정론은 나의 취향에 맞지 않습니다.”
“취향으로 과학을 결정할 순 없지요.”
“그렇지만 과학은 결국, 인간의 해석입니다.
나는 그 해석이... 지나치게 수학적이라면,
결국 현실을 놓치게 된다고 믿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그들은 말없이 회의장 안으로 향했다.
복도 너머로는 곧 데이비슨과 거머의 전자 회절 실험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었고,
양자역학의 실험적 승리는 점점 더 많은 자료로 뒷받침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알았다.
이론이 승리하는 순간에도, 진실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결정론은 죽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언어를 잃은 채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그리고 오늘 오후,
그는 마침내 자신의 카드를 꺼내기로 결심하고 있었다.
🧾 주석
[1] 아인슈타인은 실제로 1927년 회의에서
“양자역학은 정확하지만, 완전하지 않다”는 입장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숨은 변수(hidden variables)’ 개념은 이 회의에서 직접 언급되진 않았지만,
그의 철학적 반발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전되었다.
[2] 막스 보른은 ‘확률 해석’을 공식화한 인물로,
아인슈타인의 결정론 철학과 가장 선명한 대립을 이룬다.
이 둘의 편지 왕래는 수십 년간 이어졌다.

– 숨은 것을 보는 눈
🕰️ 1927년 10월 27일 오전 10시 20분
📍솔베이 과학연구소 대강당
막스 보른의 발표가 끝났을 때,
강당 안은 고요했지만 팽팽했다.
파동함수의 확률 해석과 관측의 의의에 대한 설명은 매끄러웠고,
그의 어조엔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 청중에게만 닿는 언어였다.
어떤 이들에겐, 보이지 않는 실재를 포기한 선언처럼 들렸다.
아인슈타인은 발표가 끝나자마자 조용히 손을 들었다.
“보른 박사, 당신의 수학은 정확하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보른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은 파동함수가 입자의 상태를 설명하는 완전한 기술이라고 보십니까?”
보른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예. Ψ는 계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¹
“하지만 Ψ는 측정 전 상태를 기술할 수 없지요.”
“그건 파동함수의 본질입니다. 측정 결과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그 말을 받아 적으며 천천히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물의 상태가
실제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선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이야기군요.”
“정확히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측정값의 분포뿐입니다.”
“하지만 사물은 측정되지 않아도 존재합니다.”
“그게 박사님의 철학이지요.”
“그게 과학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보어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인슈타인 박사,
우리는 ‘존재’라는 단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요?
측정할 수 없는 존재란, 과학에서 어떤 지위를 가질 수 있습니까?”²
아인슈타인은 고개를 저었다.
“보어 박사, 측정할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중세에도 전자기장을 측정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항상 거기 있었지요.”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메모장을 펴고,
짧은 문장을 읽었다.
“나는 신이 주사위를 던진다고 믿지 않습니다.”³
이 선언에 강당 전체가 조용해졌다.
몇몇 학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일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의 동의를 보냈다.
그러나 보어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
“박사님, 제발 신에게 당신의 법칙을 강요하지는 마십시오.”
그 순간, 회의장의 공기는 뜨거워졌다.
두 거인의 대립은 철학을 넘어,
세계관 전체의 충돌로 번지고 있었다.
쉬는 시간, 아인슈타인은 로런츠와 나란히 벽 쪽에 섰다.
그는 로런츠에게 조용히 말했다.
“나는 양자역학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로런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인슈타인, 만약 숨겨진 변수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로 존재합니까?”
“우리는 아직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존재해야만 합니다.
세상은 갑작스러운 ‘측정’으로 자신을 결정짓는 구조가 아닙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공중에 그리듯 적었다.
“세계는 언제나 하나의 상태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보든, 보지 않든 간에.”
그날의 마지막 발표가 끝나자,
몇몇 참석자들은 그날 논쟁을 정리해 메모에 남겼다.
📄 에드워드 드바이는 기록에 이렇게 썼다.
“오늘 아인슈타인은 말없이 이론의 그림자 너머를 가리켰다.
보어는 그 그림자를 실체라고 불렀고,
하이젠베르크는 그 그림자조차 확률로 기술하려 한다.”
🧾 주석
[1] 보른의 확률 해석은 Ψ의 절댓값 제곱 |Ψ|² 이
입자의 위치나 상태에 대한 확률 밀도를 나타낸다는 주장이며,
이는 양자역학에서 표준적 해석으로 자리 잡는다.
[2] 보어는 반복적으로 ‘측정 가능한 것만이 물리학의 대상’이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이는 코펜하겐 해석의 핵심 명제 중 하나다.
[3]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실제 발언으로,
양자역학의 비결정론적 해석에 대한 철학적 거부를 상징하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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