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분리된 실재인가, 연결된 확률인가"
– 침묵의 반격
🕰️ 1935년 3월 20일, 오전 9시 30분
📍미국 뉴저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 아인슈타인 사무실
창밖에는 봄비가 가늘게 흩날리고 있었다.
나뭇가지마다 새순이 돋아났고,
창가의 철제 히터는 오래된 금속 특유의 열기를 풍기고 있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책상에 앉아 펜을 돌리고 있었다.
이날 아침, 그는 다른 날보다 조금 더 무겁고 조용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탁자 위엔 두 장의 원고가 펼쳐져 있었다.
하나는 아인슈타인이 직접 쓴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리스 포돌스키와 네이선 로젠의 손이 거친 논문 초안이었다.
그 제목은 간결했다.
"Can Quantum-Mechanical Description of Physical Reality Be Considered Complete?"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적 기술은 완전한가?)
아인슈타인은 이 문장을 적으며 손에 다시 힘을 줬다.
“이것은 공격이 아니다.
이것은 물음이다.
하지만 이 물음은… 폭발적일 것이다.”
그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였다.
창가 너머로 조용히 들어오는 봄빛 아래에서,
그는 마지막 문장을 썼다.
“우리는 양자역학의 현재 해석이 물리적 실재에 대한 완전한 기술이 아님을 보일 것이다.”¹
그는 펜을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
‘숨은 변수’—그는 이 개념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그는 보어에게 그 개념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고,
반박하려 했다.
그리고 이 논문은 바로, 그 반격의 서막이었다.
프린스턴 대학의 회랑에는
이제 막 가르마를 깔끔하게 넘긴 로젠과,
짙은 안경을 쓴 포돌스키가 조심스럽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아인슈타인의 방 앞에서 숨을 골랐다.
“그는 정말 이걸… 네이처에 제출하실 생각인가요?”
로젠이 낮게 물었다.
포돌스키는 한쪽 눈썹을 살짝 올리며 말했다.
“예. 이건 단순한 논문이 아닙니다.
이건 선언입니다.
코펜하겐 해석이 완벽하지 않다는…”
문이 열렸다. 아인슈타인이 나왔다.
그는 조용히 두 사람에게 원고를 건넸다.
“잘 정리해주게.
그리고 기억하게.
이건 전투가 아니라, 철학이다.”
그날 오후, 그 논문은 네이처 편집부에 접수되었다.
그리고 세계는 다시,
아인슈타인의 이름 아래 양자역학의 심장부를 찌르는 물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 주석
[1] 1935년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로젠이 발표한 논문(EPR)은
양자역학이 “실재에 대한 완전한 기술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특정 조건에서 숨은 변수가 존재해야 함을 논리적으로 제시했다.
이는 코펜하겐 해석을 정면으로 반박한 대표적인 문헌이다.
[2] ‘숨은 변수 이론’은 파동함수의 확률적 해석 외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결정적 요인이 존재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통해 양자역학의 비결정성을 넘어서려 했다.
[3] 포돌스키와 로젠은 당대 미국 내에서 양자역학의 수학적 정밀도에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었지만,
아인슈타인의 철학적 입장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4] 이 논문은 이후 수십 년간 양자 논쟁의 중심이 되었으며,
‘비국소성’(non-locality) 개념의 출발점이 되었다.
– 벨의 직선, 확률의 틈새를 가르다
🕰️ 1964년 11월 4일, 오후 4시 45분
📍스위스, 세르른 근처 유럽 입자물리연구소(CERN)
CERN 이론물리 연구동의 회의실.
짙은 갈색 수트에 단정한 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두꺼운 공책에 무언가를 몰입하듯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존 벨(John Bell), 북아일랜드 출신의 이론물리학자.
당시에는 입자물리학의 엘리트 연구자였지만,
그가 진정 몰두하고 있는 주제는 입자 충돌도, 강력도 아니었다.
그가 쓰고 있던 논문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On the Einstein Podolsky Rosen Paradox”
그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가 다루는 것은 단순한 해석이 아니었다.
그는 양자역학의 심장부를 논리의 칼날로 가르려 하고 있었다. ¹
책상 옆의 창문 틈으로는 제네바 호수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스며들었고,
철제 난방기 아래에서 그는 몸을 웅크린 채 머리를 쥐어짰다.
“아인슈타인은 말했지.
'양자역학은 완전하지 않다'고.
그럼 나는 이 말을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그는 '국소성(locality)'과 '실재성(realism)' 사이의 긴장을
논리식으로 정제해가고 있었다.
칠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A(a, λ), B(b, λ) ∈ {+1, -1}
E(a, b) = ∫ dλ ρ(λ) A(a, λ) B(b, λ)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조용히 그 결과를 덧붙였다.
|E(a, b) - E(a, c)| ≤ 1 + E(b, c)
그것은 바로,
벨의 부등식(Bell’s inequality). ²
이 부등식은 단순한 수학 공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물리학에게 물었다.
“양자역학은 정말 이 세상이 분리된 실재들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저녁이 되어 사무실 불이 꺼지고 난 뒤에도
벨은 홀로 남아 책상에 앉아 있었다.
동료들은 그가 '이상한 문제'를 붙잡고 있다고 수군댔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나는 이해하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 우주의 숨겨진 회로를
들춰봐야 한다.”
몇 달 뒤, 그의 논문은 발표되었고
처음에는 거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클라우저(Clauser)**와 프리드먼(Freedman),
그리고 나중의 **아스펙(Aspect)**에 이르기까지,
벨의 부등식은 실험적 도전의 중심이 되었다. ³
“실험이 양자역학을 따른다면,
이 부등식은 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실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존 벨은 그런 결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세계를 잃더라도,
진실을 얻기를 바랐다.
🧾 주석
[1] 존 벨은 1964년 발표한 논문을 통해 EPR 역설을 수학적으로 분석하고,
'국소 실재론'을 기반으로 도출되는 통계적 예측이
양자역학의 예측과 다르다는 사실을 명확히 제시했다.
[2] 벨의 부등식은 단순한 수학적 관계식을 넘어,
물리학의 철학적 전제를 실험 가능한 수치로 제시했다.
특정 실험 조건하에서 양자역학이 이를 위반할 경우,
'국소성' 또는 '실재성'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3] 1972년 클라우저와 프리드먼은 벨의 부등식을 실험적으로 검증했으며,
1981년 이후 아스펙의 실험은 그 위반을 확정적으로 보여줬다.
이는 코펜하겐 해석의 우위를 강화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4] 벨은 죽기 전까지 양자 비국소성의 철학적 의미를 고찰하며,
과학의 본질은 ‘예측’이 아니라 ‘이해’라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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