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이 존재를 정의하는가?”
– 무너지는 직관, 파동의 잔상
🕰️ 1927년 10월 28일 오전 9시 10분
📍브뤼셀, 솔베이 과학연구소 대강당
새벽의 비는 잦아들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탁했다.
짙은 회색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고,
솔베이 연구소의 커다란 창은 밤새 스며든 습기로 흐릿하게 김이 서려 있었다.
강당 천장 가까이에 매달린 샹들리에엔 전날부터 켜진 백열등이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빛은 사람들의 얼굴을 명확하게 비추지 못했고,
학자들은 긴장과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첫 발표자였던 에르빈 슈뢰딩거는 무표정한 얼굴로 단상에 올랐다.
그의 코트 자락은 정돈되어 있었고, 오른손엔 연필 대신 잘 깎인 분필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가 쓴 첫 번째 문장은 칠판을 향해 똑바로 적혀나갔다.
“Ψ는 실재인가, 아니면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보의 집합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수학적 의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를 무엇이라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도발이었다. ¹
슈뢰딩거는 파동 방정식을 한 줄 한 줄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매끄럽게, 때로는 날카롭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일정했지만, 그의 눈빛은 깊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자신이 이 칠판 위에 적고 있는 기호들이
그 자체로 세상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 방정식은, 계의 시간에 따른 상태를 설명합니다.
하지만 질문은… 상태란 무엇입니까?”
그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듯했다.
그는 분필을 잠시 내려놓고, 두 손으로 칠판 가장자리를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파동함수는 확률의 도구일 뿐이라는 해석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는 주장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앞줄에 앉아 있던 아인슈타인은 그 순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노트 위에는 전날 적은 문장 하나가 아직 남아 있었다.
“측정은 실재를 정의하지 않는다.
측정은 단지 우리의 무지를 반영할 뿐이다.”
슈뢰딩거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는 그 고양이를 상자에 넣었습니다.
그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그것은 절망적인 상상력이자, 경고입니다.”²
그는 발표를 마무리하며, 분필을 한 번 돌려 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관측하지 않는 동안,
이 세상이 무엇인지.”
청중 사이엔 낮은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보어는 안경을 벗고 조용히 렌즈를 닦고 있었고,
하이젠베르크는 연단 옆에 놓인 메모지에 무언가를 빠르게 적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아무 말 없이 침묵했다.
그는 그 고양이의 상자를 이미 떠올리고 있었다.
🧾 주석
[1] 슈뢰딩거는 자신의 파동 방정식을 단순히 수학적 해석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실제로 세계의 실재성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했다.
그에 반해 코펜하겐 해석은 Ψ를 ‘지식의 상태’로 간주했다.
[2]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은 1935년에 공식 발표되지만,
그 철학적 사유는 1927년 솔베이 회의 직후 그의 편지에서 이미 언급되었다.
슈뢰딩거는 이 개념을 통해 코펜하겐 해석이 실재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3] 아인슈타인은 여러 차례 “우리가 관측하지 않아도 세계는 존재해야 한다”는
실재론적 입장을 피력했으며, 이를 통해 양자역학의 ‘완전성’을 부정했다.
[4] 1927년 솔베이 회의의 발표자 목록 중, 슈뢰딩거는 핵심 발표자 중 한 명이며
그의 발표는 이후 ‘코펜하겐 해석 반론’의 상징으로 자주 인용된다.

– 붕괴라는 이름의 철학
🕰️ 1927년 10월 28일 오전 10시 20분
📍브뤼셀, 솔베이 연구소 대강당 – 발표 직후의 토론
강당 중앙에 놓인 긴 테이블 주변엔 학자들이 밀집해 있었다.
슈뢰딩거의 발표가 끝나고, 좌장은 발표자에게 경의를 표한 뒤
“토론을 시작해도 좋습니다”라고 짧게 선언했다.
곧 하이젠베르크가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슈뢰딩거 박사님의 고양이 사고실험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관측하고,
어떤 조건에서 붕괴가 일어나는지를 명확히 아는 것입니다.”
그는 칠판에 Ψ를 적고, 곧바로 측정 연산자 Ĥ 를 옆에 붙였다.
“우리는 이 시스템의 진화를 유니타리하게 추적할 수 있지만,
측정이라는 행위가 개입되는 순간,
파동함수는 하나의 상태로 비가역적으로 붕괴합니다.”¹
그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는 실험적으로 반복 확인된 사실이며,
코펜하겐 해석은 이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보어가 천천히 뒤따라 말을 이었다.
“문제는 실재가 아니라,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양자역학은 본질적으로 가능성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가 그 가능성의 영역을 벗어나 확정된 실재를 말하려는 순간,
모순이 시작됩니다.”
그는 메모를 꺼내 짧은 문장을 읽었다.
“물리학의 임무는 자연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²
아인슈타인은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차분했지만, 반론을 준비하는 투명한 긴장이 그 안에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무릎 위의 노트를 닫았다.
“보어 박사, 우리는 말의 정의를 좁힘으로써
진리를 얻는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의 어조는 온화했지만, 어딘가 가라앉은 분노가 배어 있었다.
“‘붕괴’라는 현상은 측정자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그 붕괴는, 자연 현상이 아니라
관측자의 개입에 의한 도약이라는 말입니까?”³
하이젠베르크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측정은 관측자와 계의 상호작용입니다.
파동함수는 본래 중첩 상태에 있으며,
측정은 그 중첩을 하나의 결과로 투영합니다.”
아인슈타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마치 자연이…
인간의 눈길을 받을 때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아인슈타인 박사, 그것은 철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험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보어의 목소리는 단정했다.
“그럼 그 실험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눈을 감고 있으면 달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⁴
순간, 방 안의 공기는 차가워졌다.
그 질문은 모두가 피하고 있던 근본을 찔렀다.
보어는 깊은숨을 들이켰다.
“당신은 실재를 믿고,
우리는 예측을 믿습니다.
그것이 서로 다른 언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언어를 고치는 대신, 세계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다시 앉으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리고 이해되지 않는 세계는…
아직 설명되지 않은 것일 뿐입니다.”
논쟁은 끝났지만, 침묵은 오래 남았다.
각자의 메모엔 파동함수, 붕괴, 관측자라는 단어들이 조용히 적혀 있었고,
그 위에 적히지 않은 한 문장이 떠돌았다.
“존재는 언제부터 존재하는가?”
🧾 주석
[1] 하이젠베르크의 ‘파동함수 붕괴’ 개념은
관측자의 개입이 시스템의 상태를 확정한다는 주장으로,
코펜하겐 해석의 핵심이다. 이는 비결정성과 실재론 사이의 균열을 만들었다.
[2] 보어의 이 발언은 1927년 회의 후 그의 저술과 편지에 반복 등장하며,
그는 물리학이 ‘세계가 무엇인가’보다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3] 아인슈타인은 붕괴가 자연현상이 아니라 ‘관측자에 의한 도약’이라면,
물리학이 본질을 포기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측정이 실재를 결정한다는 관점을 ‘마술’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4] “내가 보지 않을 때에도 달은 존재한다”는 그의 유명한 반박은
코펜하겐 해석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한 표현이며,
양자역학에 대한 그의 철학적 입장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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