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는 순간, 세계는 무엇이 되는가?”
– 실험보다 깊은 의심
🕰️ 1927년 10월 26일 오전 9시 10분
📍브뤼셀, 솔베이 과학연구소 대강당 로비
밤을 지새운 브뤼셀의 공기에는 깊은 피로가 서려 있었다.
숙소 창을 열자 습기 찬 공기가 안으로 흘러들었고,
모든 것이 잔잔히 축축했다. 마치 세계 자체가 숨을 가쁘게 고르고 있는 듯했다.
아인슈타인은 일찍 연구소에 도착해,
대강당 로비의 낡은 가죽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커피가 있었고,
머릿속에는 측정 이전의 세계에 대한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떠돌고 있었다.
“우리는 세계를 보기 전까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보는 행위가 세계를 바꾸는 것이라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이해하고 있는가?”
그는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곧 하이젠베르크와 파울리의 발표가 예정되어 있었다.
특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그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든 주제였다.
문득, 그 앞에 슈뢰딩거가 앉았다.
눈가에는 밤샘의 흔적이 역력했고,
손엔 검은색 노트가 들려 있었다.
“박사님,”
“...그 고양이, 계속 생각나더군요.”
“생각이 아니라, 저주 같습니다.”
그는 노트를 펼쳤다.
그 안엔 상자, 방사성 붕괴, 독극물 장치, 그리고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다.
“양자적 상태의 중첩이,
실재하는 생명에도 적용된다는 논리는…
학문이 아니라 블랙 코미디에 가깝습니다.”¹
아인슈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내려놓았다.
“우리는 무언가를 보려 했고,
그 시도가 이제 보는 것 자체의 의미를 해체해버렸군요.”
잠시 후, 복도 너머에서
하이젠베르크와 파울리가 조용히 걸어 들어왔다.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눈 뒤 강당 안으로 들어갔고,
그들의 발표가 곧 시작되었다.
그 발표는, 측정이 갖는 본질적 불확실성과
우리 지식의 한계에 대한 선언과도 같았다.
🧾 주석
[1] 슈뢰딩거는 실제로 이 시기, ‘고양이 사고실험’의 기본 아이디어를 구상 중이었으며,
이는 1935년 공식 논문과 편지에서 발전된 형태로 등장한다.
고양이는 ‘양자 중첩 상태’의 논리적 파열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 불확정한 손, 흔들리는 눈
🕰️ 1927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솔베이 과학연구소 강당 내부
무대 앞 단상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섰다.
그의 손에는 몇 장의 노트가 들려 있었고,
목소리는 또렷하고 단단했다.
그러나 그의 발표 내용은,
세계에 대한 단단한 믿음을 허물어뜨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단지 기술적 한계가 아닙니다.
세계의 구조 자체가 그렇습니다.”¹
강당에는 정적이 흘렀다.
아인슈타인은 두 손을 모은 채 턱 밑에 대고 발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얼어붙은 듯, 발표자의 입술 하나하나를 따라가고 있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어서 수식을 적었다.
불확정성 원리를 간결한 형태로 나타내는 공식이었다.
Δx · Δp ≥ ħ / 2
그는 말없이 분필을 내려놓고, 잠시 강단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자연의 한계입니다.
측정이라는 행위는,
그 대상의 상태에 간섭할 수밖에 없습니다.”
뒷줄에 앉은 볼프강 파울리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청중의 반응을 살폈다.
니엘스 보어는 만족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이 수식 하나로, 자신의 철학이 정당화되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단지 노트에 짧게, 굵은 필체로 적었다.
“측정은 현실을 파괴한다?”
곧장 이어서 그는 작은 글씨로 다시 적었다.
“그러나 측정 이전의 현실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가?”
발표가 끝나자, 조용한 박수가 흘렀다.
그러나 그것은 찬사의 박수라기보다는
경외와 불편함이 섞인, 애써 정리된 예의였다.
쉬는 시간, 강당 구석에 모여든 과학자들 사이에서
작은 논쟁들이 속삭임처럼 피어났다.
드브로이, 로런츠, 드바이, 랑쥐뱅—
그들 대부분은 여전히 고전 물리학의 언어를 몸에 새기고 있었다.
양자역학의 이 새로운 서사는
그들에게 이해를 요구하지 않고, 수용을 강요하는 듯한 이론이었다. ²
아인슈타인은 복도를 따라 걸어 나갔다.
한 손엔 노트가 들려 있었고, 다른 손은 이마에 걸쳐져 있었다.
그의 속은 분명히 뒤집히고 있었지만,
그는 그 갈등을 외면하지도, 밀어내지도 않았다.
그 순간, 보어가 다가왔다.
“박사님, 이 수식은 단순하지만 강력합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의 존재를 선언합니다.”
“나는 본질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을 과학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실험에서 증명되고 있다면요?”
“그럼 그 실험을 다시 설계해야겠지요.
측정이 실재를 훼손한다면,
우리는 그 측정법을 의심해야 합니다.”
보어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말은... 19세기적 사유입니다.”
“그 말은... 과학이 철학을 버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두 사람은 복도 끝에서 다시 갈라졌다.
그날 오전, 발표는 이어졌지만,
강당에는 더 이상 ‘세계는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히 대답할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
오직 수식만이 남아 있었고,
그 수식은 말없이 모든 것을 예측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 주석
[1]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1927년 이 솔베이 회의에서
철학적으로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측정이 대상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양자역학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2] 많은 물리학자들은 이 시기에 양자역학의 해석보다
그 수학적 결과의 정확성에만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이론의 이해 없이 수용을 강요받는 불편함으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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