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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솔베이 회의]제3화 – 코펜하겐 대 브뤼의 밤, “두 철학이 마주 앉다”(2)

– 밤의 질문, 고양이의 그림자

🕰️ 1927년 10월 25일 오후 8시 45분
📍브뤼셀, 솔베이 과학연구소 숙소동 1층 공동응접실


보어가 떠난 후, 방 안은 한동안 정적에 잠겼다.
잔 속의 찻물이 식어가고, 벽난로의 불씨도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책상으로 돌아가,
오늘 회의에서 받은 인쇄 자료와 자신의 발표 메모 사이를 번갈아 들춰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도 한 문장에 시선이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그는 결국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걸쳤다.
1층의 공동응접실 불이 켜져 있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그 자리에 에르빈 슈뢰딩거가 앉아 있었다.
작은 책 한 권을 무릎에 올려놓고 조용히 읽고 있던 그는
아인슈타인의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아인슈타인 박사. 예상보다 빨리 오셨군요.”
“예상이라... 누가 먼저 올 거라 내기라도 하셨나?”

슈뢰딩거는 짧게 웃었다.

“솔베이 회의 5일 전, 편지로 약속했던 밤 대화 말입니다.
오늘 밤은 그 마지막 저녁이니, 지금이 그때겠지요.”

두 사람은 소파에 마주 앉았다.
탁자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말은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오늘 보어 박사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결론은 없었겠군요.”
“예, 단 하나의 결론이 있다면…
그는 실재보다 관측을 더 믿는다는 사실입니다.”

슈뢰딩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말은 옳습니다.
하지만 관측 이전의 상태를 상상하지 않는 과학이라면,
그것은 철학이 없는 수학이지요.”¹

아인슈타인은 잔잔하게 대답했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도 확률로만 세계를 설명하는 이론에 거부감이 듭니다.”
“확률은 무지의 다른 말입니다.”

슈뢰딩거는 조용히 책을 덮었다.
그 표지는 하이덱거의 『존재와 시간』 독일어 초판이었다.

“우리는 세계를 설명하려 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세계가 스스로를 감추는 방식이 확률인지도 모르죠.”

그는 고개를 들고 아인슈타인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인슈타인 박사, 혹시 동물이 실험의 일부가 된다면,
그 생명은 어떤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살아있는가요, 죽어 있는가요?”²

아인슈타인은 고개를 기울였다.

“말씀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상자 안에 고양이를 넣고,
방사성 붕괴 여부에 따라 죽는 장치를 설치한다면,
관측하기 전, 그 고양이는 어떤 상태입니까?”

아인슈타인의 눈에 반짝이는 것이 스쳤다.

“살아있거나, 죽어있거나.”
“아닙니다. 양자역학은 말하죠.
살아 있고, 죽어 있는 모든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고.”

잠시, 두 사람 사이에 길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비유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슈뢰딩거는 미소 지었다.
“그 비유는 양자해석의 허점을 드러내기 위한 함정입니다.
오늘 밤, 그 함정을 함께 파고 싶었습니다.”³

그들은 함께 웃었지만,
웃음의 끝은 날카로웠다.


그날 밤, 고양이는 아직 상자 안에 있었고,
그 상자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슈뢰딩거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그 비유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리고 훗날, 그 고양이는 물리학사의 심연을 상징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 주석

[1] 슈뢰딩거는 철저히 직관적 이해를 중시했으며,
양자역학의 통계성과 해석상의 난점을 철학적으로 비판했다.
[2] ‘고양이 사고실험’은 이 회의 몇 년 후 공식화되지만,
초기 아이디어는 이미 아인슈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싹트고 있었다.
[3] 슈뢰딩거는 1935년 유명한 편지에서 이 사고실험을 비꼬는 비유로 사용하며,
양자 해석의 중첩 문제와 실재성의 모순을 부각했다.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의 고민

 

– 해석은 사라지고, 질문만 남는다

🕰️ 1927년 10월 25일 밤 10시 30분
📍브뤼셀, 숙소동 바깥 벤치 앞, 짙은 안갯속


브뤼셀의 밤은 깊어졌고,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잔잔한 안개로 번져 있었다.
숙소 밖 벤치에는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함께 대화를 마친 후, 말없이 이곳까지 나와 앉은 것이었다.
가로등은 흐릿하게 빛났고, 불빛이 퍼져 안갯속에서 둥그런 원을 그렸다.
둘은 그 원 안에서 생각을 반추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밤 동안 많은 것을 이야기했지만,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지나쳤을지도 모르겠군요.”
슈뢰딩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가 이해하려는 세계는,
이미 설명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그렇게 답했다.

“나는 측정 이전의 세계를 믿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확신도,
어쩌면 나 스스로 지탱하고 있는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¹

슈뢰딩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보어가 말한 해석은 저에게도 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날 가장 잘 작동하고 있음을 부정하긴 어렵죠.”²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은 조용히 말했다.
“과학이란 결국 실용성과 타협하는 것인가요?”

그 질문에 슈뢰딩거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회의록 메모장을 꺼내 한 페이지를 찢어, 무릎 위에서 펜을 꺼내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고양이는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다’
라는 문장을 누군가에게 보낸다면,
그는 나를 미친 사람이라 생각하겠지요.”³

그 말에 아인슈타인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런 미친 문장이,
지금 이 학문을 움직이고 있는 원동력이라는 것이
더 미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조용히 웃었지만,
그 웃음은 피로와 싸우는 마지막 방어선 같았다.
그 순간, 안개 너머로 느린 발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 작별한 줄 알았던 니엘스 보어
낡은 코트를 걸친 채 가로등 아래로 모습을 드러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말은 없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엔 무언가 공통된 감정이 있었다.
이 세계를 향한 끈질긴 탐색.
해석을 내려놓고도 여전히 남는 질문.
그리고 질문이 존재하는 한,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믿음.
세 사람은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짙은 안갯속에서도, 그들 사이에 묵직한 연대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날 밤, 브뤼셀은 차가웠지만,
물리학은 뜨겁게 흔들리고 있었다.
해석은 사라졌고, 질문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 주석 

[1] 아인슈타인의 철학은 과학적 실재론(Scientific Realism)에 기반을 두며,
관측 이전에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세계를 주장했다.
[2] 보어의 코펜하겐 해석은 그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예측력과 실험적 정합성 덕분에
당시 가장 널리 받아들여졌다.
[3] 슈뢰딩거는 훗날 편지에서 "나는 그런 고양이를 생각해 냈고,
그것은 무의미한 해석들을 조롱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