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붕괴의 역설
🕰️ 1927년 10월 25일 오전 10시 15분
📍솔베이 과학연구소 제1회의실, 동쪽 창가 쪽 좌석
단상에서 보어가 자리에 앉고, 회의장의 공기는 잠시 정적 속에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 정적은 오히려 예고였다.
에르빈 슈뢰딩거가 조용히 일어섰다.
그는 단상으로 가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앉은 자리에서 노트를 펼치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젯밤, 저는 아인슈타인 박사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대화는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었고,
한 가지—조금은 기묘한 비유를 떠올리게 했습니다.”[1]
그가 조심스럽게 책상 위에 한 장의 종이를 올렸다.
종이 위엔 펜으로 그린 단순한 상자 그림과 몇 개의 도식이 있었다.
“하나의 상자 안에 고양이를 넣습니다.
상자 안에는 방사성 원소가 들어 있고,
이 원소는 1시간 이내에 붕괴될 확률이 정확히 50%입니다.
붕괴가 일어나면 탐지기가 이를 감지하고,
독가스가 방출되어 고양이는 죽게 됩니다.”[2]
일부 참석자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하이젠베르크가 중얼거렸다.
“그건 너무 극단적이지 않나…?”
그러나 슈뢰딩거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이 상자를 닫고,
1시간 동안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고양이는 이 동안 ‘살아 있음’과 ‘죽어 있음’의
두 상태가 동시에 중첩되어 존재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상자를 여는 순간—그 중첩이 붕괴되고,
고양이는 살아 있거나 죽은 상태로 결정됩니다.”[3]
그의 눈빛은 진지했고, 한 글자도 흘리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건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측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나의 생명체가 동시에 살아 있고 죽어 있다는 말은…
현실 세계와 양자 세계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증거 아닙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인슈타인은 슈뢰딩거를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중얼거렸다.
“바로 그거야. 우리가 감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으로,
현실이 묘사되고 있다는 점.”[4]
슈뢰딩거는 말을 이었다.
“저는 양자역학이 수학적으로 정교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해석은—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합니다.
실재, 연속성, 직관, 그리고 윤리적 직감까지.”[5]
보어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는 의외로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의 비유는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고전적인 계(classical system)입니다.
중첩 상태는 미시계에 한정되는 것이지요.”[6]
슈뢰딩거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미시계이며, 어디서부터가 거시계입니까?
어떤 시점에서 중첩은 ‘불가능’해지는 것입니까?”
보어는 잠시 말을 멈췄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주석
[1] 슈뢰딩거는 이 회의 직후인 1935년, 고양이 사고실험을 정식으로 제안했다.
이 아이디어는 보어의 해석을 비판하기 위한 철학적 반격이었다.
[2] 실험 장치는 현대적 기준으로 간단하지만, 양자 상태를 거시계로 확장했을 때의 모순을 명확히 드러낸다.
[3] ‘중첩(superposition)’은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이다. 고양이 사고실험은 이 중첩이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풍자한 것이다.
[4] 아인슈타인은 이 사고실험에 호응하며, 코펜하겐 해석의 비직관성과 실재성 결여를 계속 문제 삼았다.
[5] 슈뢰딩거는 수학적 구조는 인정하면서도, 그 해석이 우리의 철학적 직관과 충돌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6] 보어는 측정 기기와 관찰자가 ‘고전적’ 체계에 속한다고 보며, 양자 효과는 이 고전계와의 경계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경계의 명확한 기준은 없다.

– 진실은 멀리, 실험은 가까이
🕰️ 1927년 10월 25일 오후 12시 10분
📍솔베이 과학연구소 외부 정원 벤치
정오의 종소리가 연구소 인근 교회에서 울렸다.
쇠소리가 안개 낀 공기를 흔들듯 뚜렷하게 퍼졌고,
그 소리에 회의실에서 빠져나온 인물들이 하나둘씩 마당에 모여들었다.
화단 옆 벤치에는 슈뢰딩거가 앉아 있었다.
그 옆에 아인슈타인이 조용히 다가와 앉았다.
둘은 말없이 1분 남짓을 함께 침묵 속에 있었다.
먼 곳, 연구소 정문 근처에서 보어가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고, 조용히 시선을 깔며 정원을 지나쳤다.
슈뢰딩거는 그를 바라보다가, 한마디 내뱉었다.
“그는 과학이 아니라, 신비주의자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신비주의는 실험과 결과를 통해 승인을 받고 있지.”
아인슈타인은 대꾸했다.
“우리는 그의 세계를 이해하진 못하지만, 결과는 그를 따라간다.”[1]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슈뢰딩거는 조용히 노트를 펼쳤다.
그 노트에는 방금 회의에서 발표했던 사고실험 도식이 다시 그려져 있었다.
“이 고양이는, 그저 비유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조차 설명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언어가 틀렸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아인슈타인은 먼 시선을 허공에 두며 말했다.
“언어는 틀릴 수 있고, 해석은 바뀔 수 있어도
실재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야 해.
그렇지 않다면, 이건 과학이 아니야.”[2]
그 말에 슈뢰딩거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조용히 노트를 덮었다.
바람이 불어, 정원 가로수에서 낙엽 하나가 두 사람의 발등 위에 떨어졌다.
아인슈타인은 그 낙엽을 바라보다, 작게 중얼거렸다.
“우리가 그 낙엽을 보지 않았더라도,
그건 여전히 떨어졌을 거야.”
정오의 햇살은 안개를 조금 밀어냈고,
솔베이 연구소 벽면의 붉은 벽돌이 선명히 드러났다.
그 순간, 연구소 내부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오후 회의가 다시 시작되는 신호였다.
두 사람은 조용히 일어섰다.
다시, 단상과 수식과 이론의 세계로 들어갈 준비를 하며.
그들이 다시 회의실로 들어설 때,
보어는 문 옆에서 그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아인슈타인은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그 누구도 아직 정답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회의는 단지 논쟁의 시작이었고,
양자역학은 아직 ‘설명’되지 않았다는 것을.
🧾 주석
[1] 보어의 코펜하겐 해석은 실험적으로 반복 검증된 ‘예측 능력’에서 강점을 가졌고,
그로 인해 많은 물리학자들이 실재론적 의문을 잠시 내려놓게 되었다.
[2] 아인슈타인의 철학은 실재가 인간의 인식과 무관하게 존재해야 한다는 고전적 과학 철학에 기반한다.
그는 측정이 실재를 구성한다는 주장에 강한 불신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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