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인슈타인의 반격과 실재의 문제
침묵을 깨고 일어난 이는 예상대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다.
그는 특유의 느릿한 걸음으로 칠판 앞으로 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지만, 그는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자신의 노트를 펼쳤다.
“보어 박사의 설명은 정교하고 논리적이지만, 그 전제는 저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는 칠판에 선을 긋고, 두 개의 원을 나란히 그렸다.
하나는 현실(Realität), 다른 하나는 측정(Messung)이라는 단어로 표시되었다.
“보어 박사는 이 두 개념이 서로 얽혀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실재는 측정 이전에도 존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는 멈추지 않고 설명을 이어갔다.
“만약 누군가 우리가 달을 바라보지 않으면, 달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저는 그 세계관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¹]
회의장은 조용히 술렁였다. 슈뢰딩거는 눈썹을 치켜들었고, 하이젠베르크는 고개를 숙였다. 보어는 입을 다문 채, 천천히 손가락을 모아 깍지꼈다.
아인슈타인은 말을 이었다.
“저는 지금부터 이 회의에서 다룰 이론이 ‘완전한 물리학’인지 의심합니다.
실재가 확률적으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물리적 설명이라기보다는 신비주의적 주장에 가깝습니다.”[²]
그는 천천히 돌아서 칠판에 또 다른 도형을 그렸다.
두 개의 입자가 원점에서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단순한 선으로 표현했다.
“이 두 입자는 서로 상호작용한 뒤 분리되어 멀어진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리고 각각의 위치에서 상태를 측정하면, 이들은 항상 정반대의 결과를 가집니다.
그런데... 관측을 하지 않으면, 이 입자들은 도대체 어떤 상태에 있는 겁니까?”[³]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그는 돌아서 좌중을 바라보았다.
“측정하는 순간 상태가 결정된다면, 그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측정은 단지 정보를 얻는 행위가 아니라, 세계를 ‘창조’하는 행위가 되는 겁니다.”
아인슈타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보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말씀은 과학이 아닌 철학으로 들립니다.
저희는 수식과 실험으로 세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조’라는 표현은 비유에 불과합니다.”
“입자의 상태는 그 자체로 정의되지 않으며, 관측이라는 행위가 그 상태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이건 관측자가 세계를 ‘창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관측 없이는 상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실험적 사실에 기반한 결론입니다.”[⁴]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말을 멈췄다.
회의장은 고요했지만, 마치 법정에서 판결을 기다리는 정적 같았다.
슈뢰딩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약 고양이를 상자에 넣고, 독극물과 방사성 원소, 측정 장치를 함께 두었다면…
우리는 상자를 열기 전까지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 고양이는 동시에 죽어 있고 살아 있다는 겁니까?”[⁵]
이 순간, 회의장은 정중동의 상태가 되었다.
아무도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이 철학적 질문을 과학적으로 부정할 수 없었다.
🧾 [주석]
[¹] 아인슈타인의 ‘달 비유’는 양자역학의 해석을 비판하면서 즐겨 사용하던 철학적 예시다.
[²] 그는 확률론적 해석이 물리학의 ‘설명’이 되기보다는 ‘기술’에 그친다고 보았다.
[³] 이 사고실험은 훗날 ‘EPR 논문’(1935년)에서 명확하게 정식화되며, 얽힘의 개념을 형성한다.
[⁴] 보어는 실재의 성립 조건을 ‘관측자와 계의 상호작용’으로 보며, 인식 이전의 상태는 의미 없다고 주장했다.
[⁵]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은 코펜하겐 해석의 문제점을 조명하기 위해 고안된 비판적 예시다.

– 여운과 밤의 사색
해가 완전히 진 브뤼셀의 밤은, 낮보다 더 짙은 안개로 가라앉아 있었다.
솔베이 연구소의 창밖에는 조용히 전차가 지나갔고, 어두운 담쟁이덩굴 너머로 오래된 가스등이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회의실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도 사라졌고, 이제 남은 건 조용한 정리와 각각의 사색이었다.
아인슈타인은 회의장을 빠져나와 연구소 외곽의 작은 정원으로 나섰다.
그의 손에는 아직 식지 않은 파이프와 접힌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그는 잔디밭 끝 벤치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눈을 감고, 마음속 별자리를 더듬듯 한 구절을 중얼거렸다.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물리학은 마법에 불과해.”[¹]
그의 눈에 맺힌 건 회의장의 장면이 아니라, 자신이 처음 상대성 이론을 정립하던 그 고요한 취리히의 밤이었다.
그때도 그는 현실을 수식으로 설명하고자 했고, 지금도 그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보어는 반대로 연구소 내부, 비어 있는 회의장에 홀로 남아 있었다.
그는 칠판에 남겨진 희미한 분필 자국을 손으로 닦아내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아인슈타인의 말이 떠올랐지만, 그는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과학은 실재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지를 결정하는 거야.”[²]
그의 눈은 날카로웠지만, 그 속엔 어느새 조용한 슬픔이 배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진실을 원했지만, 진실의 모양은 각자 달랐다.
보어는 거기서 과학의 본질을 보았고, 아인슈타인은 거기서 과학의 붕괴를 보았다.
슈뢰딩거는 숙소로 돌아와 등불 하나만 켜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는 방 안의 침묵이 오히려 더 시끄럽다고 느꼈다.
수첩을 펴고 무언가 쓰려다 말고, 다시 덮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고양이 상자를 그렸다. 열리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상자.
살아있는가, 죽어 있는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이론이 지나치게 완벽하면, 현실을 놓칠 수도 있겠지…”[³]
회의가 끝나고, 하이젠베르크는 파울리와 함께 숙소로 걸어갔다.
젊은 두 과학자는 말이 없었고, 그 침묵 속에서만 서로의 머릿속이 얼마나 복잡한지 느껴졌다.
전등 불빛 아래, 그들은 잠시 멈춰 섰다.
“형이상학이 물리학을 넘어서면, 그건 신학이 돼,” 파울리가 낮게 말했다.
하이젠베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우리가 진짜로 이해하고 싶은 건,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잖아.
예측이 아니라… 존재 말이야.”[⁴]
밤은 깊었다. 그리고 그 밤의 침묵은, 낮 동안 벌어진 열띤 논쟁보다 더 큰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고, 그것이 정확히 일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질문은, 세상을 향한 가장 인간적인 의지였다.
솔베이 연구소의 정문 앞엔 아직 안개가 자욱했다.
그리고 그 안개 속에서, 진실은 여전히 윤곽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참석자들은 느끼고 있었다.
이 회의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 [주석]
[¹] 아인슈타인의 철학은 실재론(Realism)에 근거한다. 관측과 무관하게 세계는 존재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²] 보어는 인식론적 해석을 과학의 기본으로 보았으며, ‘실재보다 해석’이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³] 슈뢰딩거는 코펜하겐 해석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는 과학의 수학적 형식보다 존재론적 직관을 중시했다.
[⁴] 하이젠베르크는 이후 1930년대에 철학적 물리학 저작을 집필하며, 존재와 인식의 균형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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