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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양자역학의 탄생사] 제9편 신은 주사위를 던지는가 – 보어 vs 아인슈타인의 최후 논쟁

불확정성 이후, 양자역학은 어디로 가는가

키워드: 1927년 솔베이 회의, 불확실성, 측정 문제, 철학의 전면화

1927년,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를 통해
자연은 애초에 불확실하며, 측정이 세계를 결정한다는
혁명적인 메시지를 발표했다.
닐스 보어는 이 원리를 바탕으로
양자역학 해석의 표준이 될 코펜하겐 해석을 정립했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자연은 본질적으로 확률적이며, 측정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상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주장에 정면으로 반대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상대성 이론으로 이미 현대물리학의 아이콘이 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다.
그는 이 말을 직관적으로, 철학적으로, 과학적으로 모두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이 문장은 단순한 반론이 아니었다.
자연의 실재란 무엇인가?
두 입자가 멀리 떨어졌을 때, 하나가 다른 하나에 즉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이러한 철학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질문이
결국 양자정보과학의 태동까지 이어지는
20세기 과학의 마지막 대논쟁을 만든다.

1. EPR 논문 (1935) –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질문

키워드: 현실성, 국소성, 완전성, 양자역학 비판

1935년, 아인슈타인은 동료 보리스 포돌스키, 나탄 로젠과 함께
EPR 논문(Einstein-Podolsky-Rosen paper)을 발표한다.
정식 제목은:

"Can Quantum-Mechanical Description of Physical Reality Be Considered Complete?"

 양자역학은 현실을 완전히 기술할 수 있는가?

 

이 논문은 세 가지 철학적 전제를 기반으로 한다:

현실성(Reality): 어떤 물리량이 관측 없이도 확실히 예측 가능하다면, 그 물리량은 실재한다.

국소성(Locality): 물리적 영향은 빛보다 빠르게 전달될 수 없다.

즉, 두 입자가 멀리 떨어져 있다면 서로에게 즉각적인 영향은 줄 수 없다.

완전성(Completeness): 모든 실재하는 물리량은 이론적으로 기술 가능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이 전제를 바탕으로 양자역학이
물리적 실재에 대한 완전한 설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양자역학이 **“숨겨진 변수(hidden variables)”**를 포함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불완전한 이론이라고 본 것이다.

EPR 논문(Einstein-Podolsky-Rosen paper)

2. 양자얽힘 – 하나가 바뀌면, 다른 하나도 즉시?

키워드: 얽힘 상태, 비국소성, 순간정보 전달

EPR 논문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바로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다.
얽힘이란, 두 입자가 한 시스템에서 상호작용한 뒤 분리되어도,
서로의 상태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관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두 입자의 스핀을 측정한다고 하자.
입자 A와 B는 스핀의 방향이 서로 반대인 상태로 얽혀 있다.
이때 A의 스핀을 ‘위’라고 측정하면,
즉시 B의 스핀은 ‘아래’로 정해진다.
설령 A와 B가 빛의 속도로 10년 걸리는 거리만큼 떨어져 있어도,
측정 순간 그 정보는 즉시 전파된다.

이것은 고전적 상식에 어긋난다.
“빛보다 빠른 정보 전달은 불가능하다”는 국소성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상황을 **“기묘한 유령 같은 작용(spooky action at a distance)”**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양자얽힘이 자연의 진짜 모습일 리 없다고 믿었고,
**‘숨겨진 변수 이론’**이라는 대안을 주장했다.
즉, 입자들의 상태는 측정 전부터 정해져 있고,
우리가 모르는 변수가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3. 보어의 반론 – 보완성(Complementarity)의 철학

키워드: 보완성 원리, 국소성 폐기, 현실의 재정의

아인슈타인의 비판에 대해 닐스 보어는
오히려 그것이 양자역학의 본질임을 강조한다.

보어는 **‘보완성 원리(Complementarity)’**를 제시하며 이렇게 말한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처럼 상반된 속성은,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
이는 자연의 제약이자, 우리 관측 능력의 한계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의 구조다."

 

보어는 국소성이나 실재성을 포기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세계는 측정될 때 비로소 속성을 갖는다고 말하며,
관측자와 피관측자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 세계관을 옹호했다.

즉, 현실이란 측정으로 나타나는 결과일 뿐이며,
측정 전의 상태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철학은 직관과 상반되지만,
놀랍게도 실험적으로는 항상 양자역학의 예측이 옳았다.

4. 벨의 정리 – 논쟁은 다시 실험으로

키워드: 존 벨, 1964년,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의 반박

아인슈타인이 사망한 지 10년 뒤,
1964년 영국의 물리학자 **존 벨(John Bell)**은
**‘벨의 정리(Bell’s Theorem)’**를 발표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인슈타인의 전제가 맞다면,실험 결과는 특정한 수학적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그 조건을 **‘벨 부등식(Bell Inequality)’**라고 하며,
이를 통해 국소적 숨겨진 변수 이론이 옳은지 아닌지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후 수십 년간의 실험은 모두
벨 부등식을 위반하고, 양자역학의 예측과 일치했다.

즉, 자연은

국소적이지 않거나,

숨은 변수가 존재하지 않거나,

둘 다 아니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기대와 달리,
자연이 기본적으로 얽혀 있으며, 실재라는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뜻한다.

5. 새로운 세계의 시작 – 양자정보과학으로

키워드: 양자컴퓨터, 양자암호, 양자텔레포트

EPR 논쟁은 처음에는 철학적 문제로 여겨졌지만,
오늘날은 양자컴퓨팅, 양자암호, 양자통신 등의
실질적인 기술 기반이 되었다.

양자얽힘양자 텔레포트의 기초가 되었고,

비국소성양자암호의 절대보안성을 설명하며,

 

불확정성 원리양자 센서 기술의 핵심 원리로 활용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의문은 틀렸지만,
그가 던진 질문은 오히려 양자정보과학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열쇠가 되었다.

결론 – 논쟁은 끝났지만, 철학은 계속된다

1927년부터 1935년까지 이어진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논쟁은 단순한 이론 싸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실재란 무엇인가,
측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보어의 입장, 즉 코펜하겐 해석이 실험적으로 지지를 받았고,
아인슈타인은 이론적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그 논쟁이 남긴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양자역학은 수학적으로는 가장 정확한 이론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진정 무엇을 보고 있는지
지금도 수많은 해석과 철학적 논의의 중심에 있다.


에필로그 – 양자역학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로써 우리는 1700년대 뉴턴의 결정론에서 시작해,
1935년 양자얽힘의 충격까지
물리학의 근본적 전환을 이끈 여정을 따라왔다.

이제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자연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한가, 아니면 우리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더 필요한가?”

 

이 질문에 대한 탐구는
양자 인공지능, 양자 우주론, 양자 의식 연구 등으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양자역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기대하시라! 솔베이 회의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