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확신은 사라지고 ‘확률’이 들어왔다
키워드: 과학의 패러다임 붕괴, 연대기적 전환점
20세기 초, 물리학은 빛과 물질이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처럼 행동한다는
‘파동-입자 이중성’ 개념을 받아들이며 혼란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혼란은 1927년, 독일의 젊은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가 발표한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로부터 비롯된다.
그 전까지 과학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정확한 측정 도구만 갖추면, 자연의 모든 상태를 동시에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하이젠베르크는 이 질문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자연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측정의 정밀도에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즉, 자연은 애초에 불확실한 존재다.”
이 주장은 단순한 실험적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의 본성에 대한 선언이었고,
그 순간부터 과학은 결정론적 세계관을 공식적으로 포기하게 된다.
1. 1925~1926년: 배경이 되는 두 갈래 해석
키워드: 행렬역학, 파동역학, 파동함수, 관측가능성
앞편에서도 언급했지만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 원리를 발표하기 전,
양자역학은 이미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1925년: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 – 관측 가능한 물리량만 다룬 계산 방식
1926년: 슈뢰딩거의 파동역학 – 전자의 상태를 파동함수로 설명하는 연속적인 수학 모델
이 두 이론은 서로 다른 수학적 표현을 사용했지만,
물리적 예측은 같았다. 즉,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이나 전자의 상태 예측 등은
모두 동일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파동함수는 실제인가?"
"관측이 없는 상태에서도 자연은 존재하는가?" 같은
철학적인 문제는 여전히 열려 있었다.
그리고 1927년, 하이젠베르크는 측정 자체가 자연을 변화시킨다는 개념을 통해
양자역학의 본질적 특성을 명확하게 정의한다.
2. 불확정성 원리 –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알 수 없다
키워드: Δx·Δp ≥ ħ/2, 관측의 한계, 플랑크 상수
1927년 3월, 하이젠베르크는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자연의 불확실성을 제시한다:

여기서
Δx는 입자의 위치에 대한 불확실성,
Δp는 운동량에 대한 불확실성,
ħ는 플랑크 상수를 2π로 나눈 값이다.
이 식은 이렇게 해석된다:
입자의 위치를 매우 정확히 알면, 운동량은 매우 불확실해진다.
반대로, 운동량을 정밀하게 측정하려 하면,
위치는 흐릿해진다.
이 원리는 측정 장비의 정밀도가 부족해서 생기는 기술적 한계가 아니다.
자연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즉, 전자라는 존재는 입자처럼 점이 아니며,
그 상태 자체가 파동처럼 퍼져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갖지 않는다.
3. 결정론의 몰락 – 라플라스의 악마는 사라졌다
키워드: 결정론, 라플라스, 고전역학 붕괴
2편에서도 언급했지만, 18세기 프랑스 수학자 라플라스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어떤 존재가 현재 우주의 상태를 모두 알고 있다면, 과거와 미래를 완전히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세계관은 **결정론(determinism)**이라고 불린다.
고전역학은 바로 이 결정론을 수학적으로 구현한 모델이었고,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이 인과관계로 설명되었다.
하지만 불확정성 원리는 이 결정론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연의 상태를 근본적으로 완벽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측정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확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수학의 변화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인 믿음을 뒤엎는 선언이었다.
4. 측정의 패러독스 – 관측은 자연에 영향을 준다
키워드: 측정 문제, 관측자 효과, 고양이 사고실험의 씨앗
불확정성 원리가 가지는 가장 충격적인 의미는
측정이 대상의 상태를 바꾼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전자 하나가 두 갈래로 나뉘는 실험에서,
우리가 그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려는 순간,
전자 자체가 파동 상태에서 입자 상태로 변한다.
즉, **관측자(observer)**의 존재가
우주의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이때부터 과학자들은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는 관측 전에도 있었는가?”
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이 개념은 훗날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으로 이어지고,
양자역학은 더 이상 순수한 자연과학이 아닌,
철학과 얽힌 과학이 된다.
5. 1927 솔베이 회의 – 과학사 최고의 격론
키워드: 보어 vs 아인슈타인, 코펜하겐 해석, 철학적 대립
1927년 10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5회 솔베이 회의(Solvay Conference)**는
양자역학이 과학계의 주류 이론으로 도약하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하이젠베르크, 보어, 슈뢰딩거, 디랙, 아인슈타인 등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와 **코펜하겐 해석(“측정 결과만이 실재다”)**을 강력히 주장했고,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며
자연은 본질적으로 결정론적이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 회의에서 보어는 아인슈타인의 모든 반례를 논리적으로 반박하며
양자역학의 정당성을 입증했다.
그 이후 불확정성 원리는 양자물리학의 기본 원칙으로 받아들여졌고,
물리학은 확률과 불확실성의 세계로 완전히 이동하게 된다.
솔베이 회의는 별도로 아주 자세하게 재밌게 다른 시리즈로 연재 할 예정이다.
결론 – 불확실성은 과학의 실패가 아닌, 본질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단순히 측정이 어렵다는 말이 아니라,
자연이 본래부터 확정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이 개념은 물리학뿐 아니라 철학, 인지과학, 정보과학까지 영향을 주었고,
오늘날 양자컴퓨팅, 양자암호학 등의 기반이 되었다.
결정론에서 출발한 물리학은
이제 확률과 파동, 그리고 측정이 만들어내는 현실로 들어왔다.
이것은 단지 과학이 아닌,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의 전환이었다.
다음 예고 – [8단계] 보어 vs 아인슈타인의 최후 논쟁 (1927~1935)
다음 글에서는 양자역학의 해석을 두고 벌어진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대논쟁을 정리한다.
특히 EPR 역설, 양자얽힘, 정보의 비국소성 문제를 통해
양자이론이 얼마나 직관을 벗어나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양자 정보과학의 태동으로 이어졌는지도 다룰 거야.
'물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솔베이 회의]제2화 – 유령처럼 작동하는 세계(1) (2) | 2025.06.28 |
|---|---|
| [솔베이 회의]제1화-안개 속의 도착과 코펜하겐의 선언(2) (0) | 2025.06.28 |
| [솔베이 회의]제1화-안개 속의 도착과 코펜하겐의 선언(1) (7) | 2025.06.28 |
| [양자역학의 탄생사] 제9편 신은 주사위를 던지는가 – 보어 vs 아인슈타인의 최후 논쟁 (0) | 2025.06.27 |
| [양자역학의 탄생사] 제7편 양자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 행렬 vs 파동의 충돌 (0) | 2025.06.27 |
| [양자역학의 탄생사] 제6편 전자의 도약: 보어 모형과 스펙트럼의 수수께끼 (0) | 2025.06.27 |
| [양자역학의 탄생사] 제5편 아인슈타인의 확신: 빛은 입자다 – 광전효과의 해석 (0) | 2025.06.27 |
| [양자역학의 탄생사] 제4편 플랑크의 고백: 수학으로만 해결하려 했을 뿐이다 (1) | 2025.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