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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솔베이 회의 이후]제8화 – EPR 역설과 벨의 도전(마지막 회)

– 실험이 지운 실재의 그림자

🕰️ 1981년 7월 15일 오후 2시 30분
📍프랑스 파리, 콜레주 드 프랑스 – 알랭 아스펙 실험실


실험실은 좁고 어두웠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20세기의 철학을 뒤집는 시도였다.
**알랭 아스펙(Alain Aspect)**는
자신의 팀과 함께 벨의 부등식에 대한 실험을 세 번째로 반복하고 있었다.
이번엔 레이저로 양자 얽힘 상태에 있는 광자를 만들고,
두 경로로 분리한 뒤에 각 경로에서 편광 필터를 조작했다. ¹
그는 수십 번의 오류와 잡음을 무시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컴퓨터가 띠띠띠 소리를 내며 측정값을 표시했고,
결과는 이전의 예측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벨의 부등식이 명확히 위배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측정값은 통계적으로 코펜하겐 해석의 예측과 일치했다.
아스펙은 잠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가,
옆에 있던 동료에게 낮게 말했다.

“우리는... 분리된 실재를 부정한 겁니다.”

그 말은 학문적 감탄이 아니라,
어딘가 슬픈 선언 같았다.


며칠 뒤, 파리의 회의장에서
그는 학자들 앞에서 조심스럽게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는 벨의 부등식을 위반하는
통계적 결과를 세 차례에 걸쳐 확인했습니다.
이 결과는 두 입자가
국소적 실재라는 전제 없이 얽힐 수 있다는
양자역학의 예측을 지지합니다.”²

청중의 일부는 박수를 쳤고, 일부는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는 1927년의 아인슈타인이 있었고,
그의 한 마디—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가 조용히 사라져갔다.


영국의 한 대학 연구실.
존 벨은 아스펙의 실험 결과가 실린 논문을 조용히 읽고 있었다.
그는 결과에 놀라지 않았지만,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우리는 실재를 포기해야 하는가?”

그는 자신이 만든 부등식이
양자역학의 손을 들어준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기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원한 것은 해석의 ‘승리’가 아니라
실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였기 때문이다. ³


몇 년 뒤, 그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마지막 원고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우리가 아직 끝까지 온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양자역학은 완벽하지만, 설명되지 않았다.”⁴


그리고 세계는 그렇게,
측정 가능한 것들로 채워진 세계로 다시 돌아갔다.
아인슈타인의 신은 침묵했고,
보어의 확률은 날마다 실험실을 지배했다.
하지만…
누군가 그 여백을 다시 읽을 때까지.


🧾 주석

[1] 알랭 아스펙의 1981년 실험은 벨의 부등식을 테스트한 대표적인 실험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편광 필터를 이용해 비국소성(Non-locality)을 검증했다.
[2] 실험 결과는 벨의 부등식을 명확히 위배했으며,
이는 국소 숨은 변수 이론의 부정,
또는 양자 얽힘의 비국소성 수용이라는 선택지를 남겼다.
[3] 존 벨은 자신이 만든 부등식을 과학적 무기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논쟁이 아니라 ‘탐색’을 원했고,
실재에 대한 깊은 이해를 추구한 이론가였다.
[4] 벨은 사망 직전까지 양자역학 해석의 다양성과 그 한계를 고찰했으며,
그의 사후에도 ‘벨 테스트’는 계속 확장되었다.
 

알랭 아스펙(Alain Aspect)의 벨의 부등식에 대한 검증 실험

 

– 사라진 실재, 남겨진 질문

🕰️ 1990년대 중반 ~ 2020년대 초
📍세계 각국의 연구소, 대학, 그리고 사적인 서재들


1990년대,
양자역학의 실험적 지지자들은 모두 코펜하겐 해석의 위력을 논했다.
‘파동함수의 붕괴’는 더 이상 철학이 아닌 기술이 되었고,
‘얽힘’은 더 이상 이상한 개념이 아닌 양자컴퓨팅의 자원이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철학은 교과서 말미에 짧게 소개되는 인용구로 남았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학생들은 외웠지만,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이는 드물었다.


2000년대,
‘양자 얽힘’을 활용한 통신 기술과
‘양자암호’, ‘양자컴퓨터’가 하나둘씩 현실화되었다.
그리고 학계는 벨의 부등식을 넘어서
폐쇄된 조건(Loophole-Free)의 실험들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¹
그 결과는 동일했다.
실재는 연결되어 있었고,
분리될 수 없었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그 누구도 실재가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실험은 오직 결과를 만들었고,
이론은 오직 예측을 정교하게 만들었다.
이해는,
멈췄다.


2015년,
네덜란드 델프트 기술대학교에서 수행된 한 실험이
모든 논란을 종식시켰다. ²
고전적인 숨은 변수 가설은,
폐쇄 가능한 모든 구멍을 차단한 상태에서
명백히 부정되었다.
그날 이후,
아인슈타인의 실재론은 역사적 입장이 되었고,
보어의 해석은 현대 물리의 운영체제가 되었다.


그러나 몇몇 이들은
그 폐허 위에 다시 물음을 놓았다.

“우리는 무엇을 포기한 것인가?”
“우리는 실재를 포기하고,
측정 가능한 것을 택한 것은 아닐까?”³


한 젊은 이론물리학자의 노트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실재란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묻는 방식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작은 도서관의 조용한 서가,
거기엔 오래된 책 한 권이 꽂혀 있었다.
그 책의 저자: A. Einstein
제목: “The Meaning of Reality in Physics”
누군가 그 책을 꺼내 들고,
처음 몇 줄을 읽는다.
그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세상은,
우리가 관측하든 하지 않든 존재한다는 믿음.
그 믿음이 사라질 때,
과학은 단지 측정의 기술로 남을 것이다.”

그 믿음은 사라졌지만,
그 질문은 아직 살아 있다.


🧾 주석 

[1] 2010년대 초, 미국 NIST,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에서
수행된 다양한 벨 테스트 실험들은
이전의 ‘측정 지연’, ‘통신 루프홀’ 등 기술적 허점을 제거하며
결정적으로 코펜하겐 해석을 지지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2] 2015년, 네덜란드 델프트 기술대학교의 한 팀은
루프홀 없는 조건에서 벨 부등식을 위반하는
실험을 성공시켰고, 이는 ‘숨은 변수 이론’의 종말로 여겨진다.
[3] 일부 철학자들과 해석 이론가들은
코펜하겐 해석이 실재를 설명하지 않고 회피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표적으로 데이비드 봄(David Bohm)의 파동 조도 이론,
다세계 해석(Many Worlds Interpretation) 등이 대안으로 제안되었다.
[4] 양자역학의 해석 문제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으며,
그 본질은 ‘측정과 실재의 관계’라는 근본적 인식론적 문제에 닿아 있다.
 
 

 
 

맺음말

 
우리는 모든 질문에 답을 얻은 것이 아니라,
단지 더 정교한 방식으로 묻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
실재는 지금도 측정되고 있지만,
이해되는 중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1927년 브뤼셀의 회의장은 끝났지만,
그 회의에서 시작된 ‘물음’은
오늘도 우리의 이론과 철학을 흔들고 있다.
그것이 과학이 세계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서로를 포기하지도 않았다.
보어는 언어로 세계를 정의했고,
아인슈타인은 침묵 속 실재를 붙잡으려 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질문 하나는,
수십 년 후에도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남아 있다.
우리는 아직도
‘보지 않아도 달은 거기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다.
과학은 그 질문을 끝내기 위해 시작되었고,
끝내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스마트폰 속 AI가 작동하고,
양자컴퓨터가 정보를 처리하는 지금,
우리는 너무도 쉽게 ‘작동한다’는 이유만으로
세계를 안다고 말한다.
하지만 솔베이 회의의 그들은 달랐다.
그들은 ‘작동함’보다 ‘의미 있음’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실재란 무엇인가,
관측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가.
이 오래된 질문은
오늘의 기술보다 더 오래
당신의 머릿속에 머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