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어 이후, 물리학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키워드: 보어 모형의 한계, 전자 궤도의 불명확성, 연속성의 붕괴
1913년, 닐스 보어의 원자모형은 수소 스펙트럼을 설명하며
양자 개념의 실제 가능성을 증명했다.
하지만 이 이론은 여러 실험 현상에 적용할 수 없었다.
가령, 헬륨 같은 두 전자가 있는 원자,
혹은 전자 간섭 실험, 자기장 내 전자 운동 등에서는 설명이 완전히 무너졌다.
게다가 보어 모형은 여전히 전자들이 고전적으로 궤도를 돈다는 가정을 깔고 있었는데,
이는 점점 더 많은 실험 결과들과 모순되었다.
물리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진짜’ 양자역학 이론, 즉 완전한 수학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1925년과 1926년 사이,
서로 완전히 다른 접근을 한 두 인물이 등장한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Werner Heisenberg) – 1925년, 행렬역학 제안
에르빈 슈뢰딩거 (Erwin Schrödinger) – 1926년, 파동역학 제안
이 둘은 단순한 계산 방식이 아니라,
자연을 해석하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1. 1925년 – 하이젠베르크의 급진적 선언: “보이는 것만 다루겠다”
키워드: 관측 가능한 양, 행렬, 전통 물리학의 거부
1925년 여름, **독일의 젊은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당시 23세)**는
이전까지 물리학자들이 당연하게 여겨온 가정을 근본부터 부정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자연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관측 가능한 양뿐이다.
전자 궤도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가정은 의미 없다.”
이 말은 즉, 우리가 전자가 어디를 돌고 있는지를 상상하지 말고,
실제로 관측 가능한 값들만을 조작해서 물리학을 세우자는 제안이었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전자들이 궤도를 돌 때 발생하는 스펙트럼 선들의 진동수와 세기만을 수학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 데이터를 표(행렬) 형태로 배열하고, 이 값들을 조작해서 물리 법칙을 유도했다.
이것이 바로 **‘행렬역학(Matrix Mechanics)’**이다.
행렬역학은 고전역학처럼 전자의 궤도를 설명하지 않고,
대신 측정 가능한 물리량들의 관계만을 계산했다.
이것은 물리학이 철학이 아니라 실험 중심의 계산 도구라는 선언과도 같았다.
2. 1926년 – 슈뢰딩거의 반격: “자연은 파동처럼 흐른다”
키워드: 파동역학, 연속성, 슈뢰딩거 방정식, 직관적 모델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은 너무 추상적이고 직관에 반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때,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가
전혀 다른 접근법을 제안하며 무대에 등장한다.
그는 플랑크의 양자 개념과 드브로이의 물질파 이론을 기반으로,
“전자도 파동처럼 행동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전자의 상태를 기술하는 파동함수를 도입했다.
이 파동함수의 시간적, 공간적 변화를 설명하는 식이
바로 지금도 쓰이는 유명한 **슈뢰딩거 방정식(Schrödinger Equation)**이다.

이 방정식은 전자의 운동 에너지, 위치, 퍼짐 정도를 모두 포함한
연속적인 수학 모델로 전자를 기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슈뢰딩거의 접근은 매우 직관적이고 시각화하기 쉬웠으며,
기존의 고전물리학과 점진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3. 두 이론, 같은 예측 – 그럼 뭐가 다른 걸까?
키워드: 수학적 등가성, 해석의 차이, 직관 vs 계산
놀랍게도,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과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음에도, 동일한 물리적 예측을 제공했다.
즉, 수소 원자의 에너지 준위, 전이 확률, 스펙트럼 선 등을
두 이론 모두 똑같이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둘의 철학적 기반은 완전히 달랐다:
| 하이젠베르크 (1925) | 슈뢰딩거 (1926) |
| "보이는 것만 다루자" | "실재하는 파동이 있다" |
| 행렬 중심, 비직관적 | 파동 함수 중심, 직관적 |
| 관측값만 인정 | 실재적 해석 시도 |
| 결정론 폐기 강조 | 연속성 유지 의도 |
하이젠베르크는 과학이란 측정 결과를 조직화하는 수단일 뿐이며,
전자 궤도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가정할 수 없다고 본 반면,
슈뢰딩거는 파동함수를 통해 전자 자체의 존재 형태를 설명하려 했다.
이것은 단순한 수학 방식의 차이를 넘어서,
**자연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라는
심오한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졌다.
4. 코펜하겐 해석 – 결국 어느 쪽이 맞는 걸까?
키워드: 닐스 보어, 해석의 철학, 확률 해석, 관측 중심
이 충돌을 중재한 인물이 다시 등장한다.
바로 닐스 보어였다.
그는 하이젠베르크와 함께
**‘코펜하겐 해석(Copenhagen Interpretation)’**이라는
표준 양자역학 해석을 정립한다.
그들의 입장은 이러했다:
파동함수는 전자의 ‘실제 존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측정 시 특정 결과가 나올 확률을 나타내는 수학적 도구이다.
따라서, 전자는 측정하기 전까지는
위치나 운동량이 결정되어 있지 않다.
이 해석은 고전적인 실재론을 완전히 뒤엎었다.
“물리적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측정 결과만이 존재한다.”
이 선언은 과학계는 물론 철학계에도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5. 철학적 논쟁의 시작 – ‘존재’란 무엇인가?
키워드: 실재론 vs 반실재론, 양자철학의 탄생, 직관적 세계관의 붕괴
이때부터 물리학은 단순한 자연법칙의 기술을 넘어서,
**‘우리가 관측하지 않는 세계는 존재하는가?’**라는
철학적인 문제와 맞부딪치게 된다.
하이젠베르크는 1927년에 불확정성 원리를 발표하며
“전자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자연 자체가 근본적으로 불확실성 속에 있다는 말이 되며,
결정론 세계관을 무너뜨렸다.
슈뢰딩거는 “이 세계가 그렇게 모호할 리 없다”며 반발했고,
그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을 나중에 제안하게 된다.
이는 곧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철학적 대립으로 이어진다.
그 이야기는 다음 단계, [7단계]에서 다룰 예정이다.
결론 – 수학은 같지만, 세계관은 다르다
1925년과 1926년 사이,
양자이론은 두 개의 길을 동시에 걸었다.
하나는 관측 가능한 값만 다루는 행렬역학,
다른 하나는 연속적인 파동의 실재성을 믿는 파동역학.
두 이론은 수학적으로는 같았지만,
우주를 바라보는 시선,
존재에 대한 철학적 태도,
측정의 의미는 완전히 달랐다.
이제 과학은, 단지 자연을 설명하는 수식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포함하게 되었다.
다음 예고 – [제8편] 불확정성과 측정의 위기 (1927)
다음 편에서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그것이 어떻게 고전물리학의 결정론을 무너뜨리고,
측정 그 자체가 자연에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으로 이어졌는지를 설명할 거야.
이제 물리학은 관찰자 없는 우주를 상상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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