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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탄생사] 제8편 불확정성의 충격: 측정이 아닌, 세계 자체가 불확실하다 1927년, 확신은 사라지고 ‘확률’이 들어왔다키워드: 과학의 패러다임 붕괴, 연대기적 전환점20세기 초, 물리학은 빛과 물질이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처럼 행동한다는‘파동-입자 이중성’ 개념을 받아들이며 혼란 속에 있었다.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혼란은 1927년, 독일의 젊은 물리학자**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가 발표한**‘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로부터 비롯된다.그 전까지 과학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정확한 측정 도구만 갖추면, 자연의 모든 상태를 동시에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하이젠베르크는 이 질문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자연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측정의 정밀도에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즉, 자연은 애초..
[양자역학의 탄생사] 제7편 양자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 행렬 vs 파동의 충돌 보어 이후, 물리학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키워드: 보어 모형의 한계, 전자 궤도의 불명확성, 연속성의 붕괴1913년, 닐스 보어의 원자모형은 수소 스펙트럼을 설명하며양자 개념의 실제 가능성을 증명했다.하지만 이 이론은 여러 실험 현상에 적용할 수 없었다.가령, 헬륨 같은 두 전자가 있는 원자,혹은 전자 간섭 실험, 자기장 내 전자 운동 등에서는 설명이 완전히 무너졌다.게다가 보어 모형은 여전히 전자들이 고전적으로 궤도를 돈다는 가정을 깔고 있었는데,이는 점점 더 많은 실험 결과들과 모순되었다.물리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진짜’ 양자역학 이론, 즉 완전한 수학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이 과정에서 1925년과 1926년 사이,서로 완전히 다른 접근을 한 두 인물이 등장한다:베르너 하이젠베르크 (Wern..
[양자역학의 탄생사] 제6편 전자의 도약: 보어 모형과 스펙트럼의 수수께끼 제1~5편 1800년대부터 1900년대 초까지, 연대기로 돌아보자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과학사의 흐름은,한 편의 연극처럼 차례차례 무대 위로 사건과 인물이 등장하는 긴 서사였다.이제 제6편으로 넘어가기 전에, 앞선 사건들을 연대별로 정리해 보자. 연도 사건 내용 요약1700~1800뉴턴역학 확립자연은 수학적 법칙으로 설명 가능 → 결정론 완성 (라플라스의 악마)1800년대 말흑체복사 문제 등장고전 이론으로 설명 불가한 스펙트럼 → 자외선 파탄 발생1900년플랑크의 양자 가설수학적 트릭으로 에너지 불연속 가정 → 플랑크 상수 등장1905년아인슈타인의 광자 해석광전효과 설명 위해 빛의 입자성 주장 → 광자 개념 탄생 이제 무대는 1913년, **덴마크의 젊은 과학자 닐스 보어(Niels Bohr)**에게로 ..
[양자역학의 탄생사] 제5편 아인슈타인의 확신: 빛은 입자다 – 광전효과의 해석 빛은 정말 파동일까? 키워드: 파동이론, 빛의 본질, 고전물리학의 위기19세기 말까지, 물리학자들은 빛은 파동이다는 믿음을 거의 진리처럼 받아들였다.맥스웰이 전자기파 이론을 정립하며,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공간을 진동하며 전파되는 파동이라고 설명했고,이는 실험적으로도 잘 맞아떨어졌다.빛의 간섭, 회절, 굴절 현상 모두 파동 이론으로 정확히 설명되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어떤 단순한 실험 하나가 이 확신을 흔들기 시작했다.바로 **금속에 빛을 비췄을 때 전자가 튀어나오는 ‘광전효과(photoelectric effect)’**라는 현상이다.이 실험은 너무나 간단했지만, 고전적인 파동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결과를 반복적으로 보여줬다.이 문제에 대해 당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어쩌다 그런 거지”라고 넘..
[양자역학의 탄생사] 제4편 플랑크의 고백: 수학으로만 해결하려 했을 뿐이다 문제는 수학이 아니라 자연이었다19세기 말, 과학은 마치 마지막 퍼즐 한 조각만 남긴 완성 직전의 그림 같았다.물리학자들은 뉴턴의 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 열역학과 통계역학까지 정리하면서"우주의 모든 원리를 거의 다 풀었다"는 자신감과 자만에 빠져 있었다.하지만 그 퍼즐을 마지막으로 끼워 넣으려던 순간,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조각 하나가 모든 그림을 흔들기 시작했다.그 조각은 다름 아닌 앞편에서 말한 **‘흑체복사 곡선’**이라는 실험 결과였다.실험으로 측정된 흑체복사의 스펙트럼은 고전 이론이 예측한 것과 완전히 달랐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Max Planck)**가 나섰다.그는 문제를 단순한 수학 공식으로만 해결하려고 했고,그 해결책으로 제시한 하나의 가정이 바로..
[양자역학의 탄생사] 제3편 흑체복사의 미스터리: 과학자들이 외면한 곡선 틀릴 리 없다고 생각했던 물리학이 틀린 순간19세기 말, 물리학은 거의 완성된 학문처럼 보였다.뉴턴의 고전역학, 맥스웰의 전자기학, 열역학과 통계역학이 정리되면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물리학은 이제 끝났다. 남은 건 소수의 소수점을 다듬는 일뿐이다."그러나 그런 낙관은 오래가지 못했다.아주 사소해 보이는 실험 하나가 모든 것을 흔들었기 때문이다.그 실험은 바로 **흑체복사(blackbody radiation)**에 관한 것이었다.빛과 열을 다루는 실험에서, 이론과 실험 결과가 완전히 어긋나는 현상이 나타났다.당시 최고의 물리학자들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일부는 그냥 무시하려 했다.하지만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Max Planck)**는 이 문제를 회피하지 않았다.그는 오직 ‘수학적으로..
[양자역학의 탄생사] 제2편 라플라스의 악마: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믿음 뉴턴이 열어놓은 문, 라플라스가 들어간 철학 뉴턴의 물리학은 마치 신의 언어를 해독한 것처럼 과학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그는 자연의 운동을 단 세 가지 법칙으로 설명했고, 하늘과 땅을 하나의 수식으로 통합했다.하지만 이 위대한 성취가 남긴 가장 결정적인 유산은 단순한 수식이 아니라 ‘세상은 모두 정해져 있다’는 믿음, 즉 **결정론(Determinism)**이었다.이 철학은 이후 수백 년 동안 과학의 중심 세계관이 되었고, 물리학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 심지어 정신과 자유의지에 대한 인식까지 영향을 주었다.결정론이라는 사상의 가장 상징적인 개념은 바로 **‘라플라스의 악마’**다.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는 뉴턴의 수학적 세계관을 한발 더 나아가..
[양자역학의 탄생사] 제1편 뉴턴의 세계관:신의 설계도에 접근한 인간 지금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양자역학은 그저 한 줄의 공식으로 요약되곤 한다. 하지만 실제 양자이론의 탄생은 거대한 한 방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별일 아니야"라고 지나쳤던 수많은 사소한 실험 오류와 미세한 이론적 충돌에서 시작되었다. 이 글은 양자역학이 태동하게 된 그 '사소한 계기'들의 연쇄적 파동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려 한다. ‘우주는 수학으로 설명된다’는 위대한 착각의 시작17세기 말, 유럽은 큰 격변기를 겪고 있었다. 종교가 지식의 중심에서 서서히 물러나고, 인간 이성이 새로운 권위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 변화의 중심에 있던 것이 바로 과학이다. 그리고 그 과학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은 인물이 있었다. 그가 바로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다. 뉴턴은 단순히 몇 가지 물리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