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이 열어놓은 문, 라플라스가 들어간 철학
뉴턴의 물리학은 마치 신의 언어를 해독한 것처럼 과학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자연의 운동을 단 세 가지 법칙으로 설명했고, 하늘과 땅을 하나의 수식으로 통합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성취가 남긴 가장 결정적인 유산은 단순한 수식이 아니라 ‘세상은 모두 정해져 있다’는 믿음, 즉 **결정론(Determinism)**이었다.
이 철학은 이후 수백 년 동안 과학의 중심 세계관이 되었고, 물리학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 심지어 정신과 자유의지에 대한 인식까지 영향을 주었다.
결정론이라는 사상의 가장 상징적인 개념은 바로 **‘라플라스의 악마’**다.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는 뉴턴의 수학적 세계관을 한발 더 나아가,
“모든 입자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과거와 미래를 완전히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과학의 놀라운 자신감을 보여주는 동시에, 철학적 충격과 논란의 시작점이 되었다.
이 글에서는 라플라스의 결정론이 어떻게 과학 전반을 지배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철학이 어떤 방식으로 양자역학의 등장에 의해 무너지게 되었는지를
과학사와 철학의 흐름을 따라 차근차근 살펴본다.

1. 뉴턴의 그림자 속에서: 예측할 수 있는 세계의 탄생
키워드: 뉴턴역학, 인과율, 결정론의 출발
뉴턴이 제시한 물리 법칙은 단지 물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법칙은 완벽한 수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통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행성의 위치를 계산하면 몇 년 후, 몇십 년 후에도 정확히 어느 위치에 있을지를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정확한 예측은 인간에게 엄청난 자신감을 주었다.
과학자들은 곧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은 거대한 기계이며, 그 기계는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우리가 그 법칙을 알고 현재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면,
미래 역시 계산할 수 있다.” 이 사고는 **인과율(causality)**에 기반한 것이며,
모든 사건은 어떤 원인에 의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믿음과 연결된다.
이것이 결정론의 핵심이다.
2. 라플라스의 악마: 전지전능한 계산자의 등장
키워드: 라플라스, 결정론 철학, 예측의 절대성
1800년대 초, 프랑스의 수학자 라플라스는 이 결정론적 사고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
그는 다음과 같은 상상의 존재를 제안한다.
“어떤 지성이 현재 우주의 모든 원자의 위치와 속도, 상호작용의 법칙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이 존재는 과거와 미래를 하나의 수식으로 계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존재는 모든 것을 안다는 의미에서 ‘악마’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이상적인 계산자다.
이것이 바로 **라플라스의 악마(Laplace’s Demon)**다.
라플라스는 뉴턴역학의 수학적 완벽함에 감탄했고,
그 법칙을 기반으로 한 100% 예측할 수 있는 세계,
즉 절대적인 결정론의 철학을 정립했다.
이 철학은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철학자, 정치가, 심지어 예술가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
우주는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구조이며, 인간은 그것을 하나하나 해석해 내기만 하면 된다는 낙관적인 믿음이 퍼졌다.
3. 결정론의 전성기: 인간, 자유의지를 의심하다
키워드: 자유의지, 물리주의, 환원론
결정론의 영향은 물리학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자연의 모든 현상을 물리 법칙으로 설명하려 했고,
이는 곧 인간의 사고, 감정, 선택까지도 물리적 작용의 결과로 이해하는 철학으로 확장되었다.
심지어 “인간의 자유의지는 착각일 뿐이다”는 주장도 과학계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되었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선택한다고 느끼는 것도,
사실은 뇌 안의 뉴런들이 특정 자극에 반응한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환원주의(reductionism)**의 형태로, 생명현상, 사회현상, 심리 현상까지도 물리학의 틀로 끌어들이려 했다.
19세기 후반에는 이처럼 모든 것은 계산 가능하다는 생각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심지어 어떤 과학자들은 “물리학은 거의 끝났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우주는 이미 완전히 해석된 책이고, 우리는 그 책장을 넘기기만 하면 된다는 과학의 오만함이 자리 잡은 시기였다.
4. 작지만 결정적인 균열: 흑체복사와 광전효과
키워드: 실험 결과의 이상 현상, 고전물리학의 한계
하지만 이 완벽해 보이는 결정론 세계관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특히 에너지와 빛의 행동을 설명하려는 몇 가지 실험에서 이상한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 흑체복사 실험에서는 고전물리학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에너지 분포가 나왔다.
또한, 광전효과에서는 빛의 세기보다 빛의 주파수에 따라 금속에서 튀어나오는 전자의 에너지가 달라지는 이상한 현상이 관측됐다.
이것은 빛이 단순한 파동이 아니라, 입자의 성질도 가진다는 증거였다.
이러한 실험들은 고전역학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는 대부분의 물리학자가 이 결과들을 “무시하거나 예외”로 취급했다.
하지만 몇몇 과학자들만은 이 작은 균열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이들이 양자역학의 기초를 닦기 시작한다.
5. 철학적 충돌: 결정론과 자유, 과학과 존재
키워드: 실재성 논쟁, 측정 문제, 철학과 물리학의 경계
결정론은 단지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결정하는 철학이다.
이 철학은 “세상은 객관적이며, 관측 여부와 상관없이 존재한다”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이 믿음은 양자역학에서 심각하게 도전받는다.
양자역학은 “입자의 상태는 측정 전에는 확정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측정이 존재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정론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철학이며,
“세상은 항상 정해져 있다”는 개념을 뒤집는다.
이러한 충돌은 곧 과학 내에서의 해석의 전쟁으로 이어지며,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유명한 논쟁, EPR 역설 등으로 발전한다.
이제 과학은 단순한 계산의 학문이 아니라,
존재와 인식의 철학적 질문까지 품게 되는 시기에 접어든다.
6. 결론 – 라플라스의 악마는 틀렸는가?
라플라스는 뉴턴의 법칙을 통해 우주는 완전히 이해 가능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안다.
입자의 상태는 확률적으로 결정되고, 측정 행위 자체가 결과에 영향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라플라스가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의 사고는 과학이 현실을 정밀하게 기술할 수 있다는 희망을 대표한다.
그러나 현실은 완벽한 예측보다, 오히려 근본적인 불확실성 속에서 움직인다.
이제 우리는 물리학이 단순히 '계산의 도구'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이자, 존재에 대한 해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다음 예고 – 3편 흑체복사의 미스터리: 과학자들이 외면한 곡선
다음 편에서는 과학자들이 무시했던 작은 실험 결과들이
어떻게 고전물리학의 세계관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는지를 알아본다.
특히, 흑체복사 문제와 플랑크의 기묘한 해결책이
어떻게 양자라는 새로운 개념을 낳게 되었는지를 깊이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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