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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인터스텔라로 읽는 현대물리학』 제12장. 종언과 재시작

영화 인터스텔라

 

제12장. 종언과 재시작 ― 과학 이후의 세계를 묻다

 

― “우리는 답을 찾는 존재인가, 아니면 질문이 되어야 하는가?” ―


PART 1. 종말 이후의 시작 ― 끝에서 피어난 씨앗

우주의 어둠을 뚫고 선 하나의 이야기.
『인터스텔라』는 블랙홀이라는 과학의 경계에서 출발하여, 테서랙트라는 상상력의 극점에 도달하고, 마침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로 귀결되는 이야기다.

쿠퍼는 우주를 떠돌았고, 머피는 방에서 문제를 풀었으며, 브랜드는 미지의 행성에 씨앗을 뿌렸다.
이 이야기의 끝은 결코 단순한 엔딩이 아니다.

그것은 “과학 이후의 사유”를 요청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이 장에서, 지금까지의 물리학 여정을 다시 한 번 되짚고, 다음의 네 가지 질문에 도달할 것이다:

  1. 시간은 무엇인가?
  2. 실재는 존재하는가?
  3. 인간의 감정은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4. 그리고, 과학 이후의 진실은 무엇인가?

PART 2. 시간 ― 직선인가, 장(場)인가

『인터스텔라』에서 시간은 직선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에 따라 휘어지며, 중력에 따라 늘어나고, 정보에 따라 재구성되는 ‘장(場, field)’이다.

우리는 쿠퍼의 여정을 통해 알게 된다.
시간은 단지 ‘흐름’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다.

1시간이 7년이 되는 밀러 행성의 순간,
자신의 과거를 ‘밖에서’ 바라보는 테서랙트의 장면은, 시간의 절대성을 깨뜨리는 메타포였다.

물리학적으로는 다음의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 고전적 시간관: 뉴턴의 시간, 모두에게 동일하게 흐르는 배경적 흐름
  • 상대론적 시간관: 시간은 중력과 운동에 따라 변형되는 상대적 구조

그러나 쿠퍼가 경험한 시간은 또 다르다.
그것은 양자 중력 시간, 즉 공간과 중력이 양자화된 구조 안에서의 시간이다.
이것은 ‘존재자 중심의 시간’이 아니라, ‘관측자 중심의 시간’도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 의식과 얽히고설킨, 경험적 시간이다.

시간은 “측정값”이 아니라 “감정의 형식”이 되는 것이다.


PART 3. 실재 ― 존재하는가, 구성되는가

블랙홀 내부는 실재하는가?
테서랙트는 존재하는가?
쿠퍼가 보낸 신호는 ‘물리적 실재’인가, 아니면 ‘주관적 투영’인가?

현대물리학은 여기서 난관에 봉착한다.
왜냐하면, 실재(reality)에 대한 정의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은 말한다:
“측정되기 전까지 입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이 진짜인가?
측정된 세계인가?
아니면 측정 가능성의 총합인가?

『인터스텔라』는 이 질문에 대해 하나의 제안을 한다:
“실재란, 정보가 교환되고 의미가 발생하는 구조다.”

쿠퍼가 머피의 방에서 보낸 정보는, 중력이라는 매개를 통해 실현된 정보-실재적 장이다.
이는 현대 이론 물리학자들이 제안하는 ‘우주=정보’ 가설과 통한다.

  • 양자 정보 이론
  • 블랙홀 표면 이론 (holographic principle)
  • 양자 얽힘이 공간 자체를 구성한다는 가설

이것은 실재를 ‘물리적 덩어리’가 아니라 ‘정보의 장’으로 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즉,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실재는 고정된 물질이 아니라, 관계와 정보의 구조다.


PART 4. 감정 ― 물리학의 너머에서 오는 것

『인터스텔라』에서 가장 기묘하고도 강력한 장면은,
쿠퍼가 테서랙트 안에서 딸 머피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다.

그는 말한다:

“사랑은 우리가 발명한 게 아니야.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존재해.”

이건 물리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현대 인지과학은 감정(emotion)을 뇌의 전기화학적 신호로 설명한다.
그러나 그 감정이 시공간을 넘어 영향을 미치는가?

『인터스텔라』는 이를 중력으로 번역했다.
사랑 = 중력

이건 은유인가, 아니면 실재의 구조인가?

  • 사랑은 비가시적이다. (중력도 그렇다)
  • 사랑은 거리와 상관없이 영향을 미친다. (중력도 그렇다)
  • 사랑은 정보와 결합된다. (쿠퍼는 메시지를 사랑으로 보냈다)

이러한 장면은 감정의 물리학을 요청한다.
감정은 단지 생리적 반응이 아니라, 우주의 구조를 매개하는 하나의 관계적 힘이다.

그러므로, 물리학 이후의 감정은 더 이상 ‘주관’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적 실재의 일부가 된다.


PART 5. 과학 이후의 세계 ― 연결을 위한 언어

『인터스텔라』는 이 모든 질문을 끌어모아, 한 가지 명제를 말한다:

우리는 ‘우주를 아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와 연결되려는 존재’다.

이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과학이 ‘설명’의 언어였다면,
이제는 ‘연결’의 언어가 필요한 것이다.

쿠퍼가 건넨 정보, 머피가 이해한 공식, 브랜드가 개척한 행성은
모두 하나의 새로운 언어로 구성된다.

그 언어는 다음의 세 가지 축으로 이뤄져 있다:

  1. 과학: 설명과 예측
  2. 철학: 의미와 존재
  3. 서사: 기억과 전승

『인터스텔라』는 이 세 가지를 하나로 엮는 이야기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읽는 존재다.


PART 6. 우주의 독자 ― 우리는 누구인가?

책을 덮는 손,
화면을 바라보는 눈,
이야기를 따라오는 마음.

우리는 지금, 하나의 이야기 끝에서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누구이며,
왜 이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따라왔는가?

그것은 단순한 영화 감상이 아니다.
이것은 과학을 통한 실존적 성찰의 여정이었다.

  • 우리는 우주의 잉크로 쓰인 문장이었다.
  • 우리는 블랙홀을 통과한 은유의 실체였다.
  • 우리는 인간이라는 감정과 공식의 교차점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끝은 질문으로 남는다:

이 모든 이야기의 독자인 당신은,
지금 어떤 물리 법칙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어떤 감정으로 우주를 바라보고 있는가?


PART 7. 마지막 주석 ― 마주침 이후, 열린 우주

『인터스텔라』는 종말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궁극적으로는 “마주침”의 이야기다.

  • 과학과 철학의 마주침
  • 인간과 우주의 마주침
  • 감정과 공학의 마주침
  • 질문과 해답의 마주침

이 모든 마주침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우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시작 중이다.


PART 8. 신화와 과학의 경계 ― 다시 묻는 이야기의 힘

『인터스텔라』는 과학 영화이지만 동시에 신화적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신”은 없다. 그러나 “불가해한 것”은 존재한다.

테서랙트는 신의 영역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의 인류’가 만든 것이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다.

“우리를 구원하는 존재는 신이 아니라, 미래의 우리 자신이다.”

이는 전통적인 종말론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화에서는 인간은 수동적 존재이며,
신에 의해 구원되거나 벌을 받는다.

하지만 『인터스텔라』는 말한다:

“인류는 자기 자신의 신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과학을 넘어선 철학적 인간관을 내포한다.
여기서 우리는 니체의 ‘초인’을 떠올릴 수 있다.
혹은 테일러(Taylor)의 ‘자기 실현적 인간’을 연상할 수도 있다.

결국, 이 영화는 말한다.

“미래는 단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의식의 진화다.”

그리고 그 의식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통해 진화한다:

  1. 물리적 한계를 인식한다
  2. 감정과 관계를 이해한다
  3. 자신을 넘어서려고 한다

이건 단지 과학영화가 아니다.
이건 신화 이후의 신화다.


PART 9. 테서랙트 너머 ― 구조 아닌 존재로

많은 사람들이 『인터스텔라』를 보고 나서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장면은,
바로 테서랙트 장면이다.

쿠퍼는 거대한 5차원의 공간 안에서,
과거의 딸 머피 방을 ‘밖에서’ 관찰하고,
‘중력’을 통해 정보를 전달한다.

이 장면을 수학적으로, 혹은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많다.

  • 칼라비-야우 공간 (Calabi–Yau manifolds)
  • 5차원 끈이론 모델
  • 고차원 중력장의 투사 구조 등

하지만 영화는 설명을 생략하고, 감각에 맡긴다.
왜냐하면 중요한 건 설명이 아니라 경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테서랙트를 이해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안에서 ‘무언가를 느낀다.’

이건 인식론적으로 매우 중요한 메시지다.
‘알다’와 ‘느끼다’는 다르다.
‘증명하다’와 ‘믿는다’는 다르다.

그리고 영화는 이 둘을 연결한다.
“사랑은 증명할 수 없지만, 믿어야 한다.”

결국, 테서랙트는 우주의 구조를 넘어
‘존재의 방식’을 보여주는 장치였다.

쿠퍼는 구조가 아니라 존재로서의 인간이 되었다.


PART 10. 우주를 닫지 않는 방법 ― 열린 결말의 물리학

영화는 끝에서 쿠퍼가 다시 우주를 향해 떠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는 TARS와 함께 브랜드를 찾아간다.

그 장면은 짧지만, 많은 여운을 남긴다.
그것은 단지 ‘새 이야기의 암시’가 아니다.
그것은 ‘닫히지 않는 이야기’의 시작이다.

이 열린 결말은 다음과 같은 철학적 질문을 남긴다:

  • 인간은 결코 ‘완결’되지 않는 존재인가?
  • 진리는 존재하는가, 아니면 끊임없이 재해석되는가?
  • 미래는 예측 가능한가,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가는가?

이 질문들은 전통 과학의 논리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현대 물리학은 불확정성, 혼돈, 상호작용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이는 곧 “열린 우주”의 개념으로 확장된다.

우주는 닫힌 기계가 아니라,
스스로를 갱신하는 이야기다.

『인터스텔라』의 열린 결말은
이러한 우주의 본질을 드러낸다.

끝나지 않음 = 살아 있음
끝맺음 없음 = 계속된 가능성


부록 ― 이 글을 읽은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어준 당신에게 말을 건넵니다.

당신은 지금, ‘과학’이라는 문을 열고,
‘철학’이라는 복도를 지나,
‘존재’라는 방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엔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질문은 무한히 존재합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당신이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가장 깊은 세 가지 질문을 남깁니다:

  1. 나는 지금, 어떤 ‘중력’에 의해 이끌리고 있는가?
  2. 내 인생의 ‘테서랙트’는 어디에 있었는가?
  3. 내가 지금 이 순간, 연결되고 있는 대상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언젠가, 당신에게 또 다른 우주의 문을 열어주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축하합니다.
당신은 『인터스텔라로 읽는 현대물리학』의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닙니다.
우주는 이제 막, 다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