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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인터스텔라로 읽는 현대물리학』 제10장. 블랙홀을 넘어서

제10장 ― 블랙홀을 넘어서: 정보 보존과 양자중력의 문

― 블랙홀은 모든 것을 삼키는가, 아니면 보존하는가 ―


PART 1. 눈을 뜨다 ― 블랙홀 이후, 낯선 탄생

어둠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쿠퍼는 눈을 감고 있었다.
감은 게 아니라, 그저 닫혀 있었던 것 같다.
감각의 모든 축이 사라진 공간에서, 그는 시간조차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빛.
작고 부드러운 빛이 그의 눈꺼풀을 스친다.

그는 눈을 뜬다.
하얀 조명이 있는 천장, 부드러운 침대, 정지된 공기.
창밖엔 별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고요한 밤하늘이 아닌,
어딘가 우주정거장 같은 느낌이다.

“당신은 살아 있습니다.”
인공지능 간호로봇의 목소리다.
“여긴 쿠퍼 스테이션. 지구 궤도 너머, 토성 인근의 궤도 도시입니다.”

그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다.
블랙홀… 가르강튀아…
테서랙트… 머피…

그리고 마침내, 그는 이해한다.
자신은 살아 있다.
그것도, 블랙홀을 넘은 그 너머의 세계에서.

이건 부활이 아니다.
이건 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그러나 여전히 설명되지 않은,
“새로운 존재로서의 전이”다.

 

쿠퍼의 태서랙트 탈출


PART 2. 쿠퍼 스테이션 ― 중력 방정식이 만든 문명

쿠퍼 스테이션.
쿠퍼의 딸 머피의 이름을 딴, 인류 최초의 중력 제어형 우주 도시.
이 정거장은 토성 근처를 공전하며,
지구의 붕괴에서 벗어난 인간들이 살아가는 새로운 터전이 되었다.

그는 병상에서 벗어나 복도를 걷는다.
건축 구조는 낯설다.
천장이 바닥이고, 바닥이 천장이다.
이건 중력이 위쪽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이 정거장은 회전형 인공 중력 시스템을 갖춘 도시이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이곳이 머피가 완성한 중력 방정식을 통해 건설되었다는 것이다.

그 방정식은 블랙홀 특이점의 데이터를 통해 완성되었다.
쿠퍼가 테서랙트에서 전송했던 양자 중력 정보 말이다.

즉, 쿠퍼 스테이션은
블랙홀 내부의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인류 도시다.
쿠퍼는, 실로 이 도시의 설계자이자,
아버지이자, 신호의 기원이자,
“시간 너머에서 온 존재”다.


PART 3. 블랙홀 정보 역설 ― 모든 것은 사라지는가

여기서 영화는 말없이 한 가지 질문을 남긴다.
“쿠퍼는 어떻게 살아서 나왔는가?”

그것은 단지 상상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현대 물리학도 여전히 블랙홀의 내면에 대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특히, 이 문제는 다음의 난제와 연결된다:

블랙홀 정보 역설 (Black Hole Information Paradox)

이것은 스티븐 호킹이 제기한 문제다.
블랙홀은 어떤 물질이든 삼켜버린다.
그 안에서 물질은 분해되고,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으며,
외부 세계와는 영원히 단절된다.

그런데, 양자역학은 말한다.
“정보는 보존된다.”
어떤 물리적 과정에서도,
그 입자의 상태를 설명하는 정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블랙홀에 떨어진 정보는
정말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면, 어딘가에 저장되거나,
혹은 다른 차원으로 전송되는 것일까?

영화는 쿠퍼를 통해
한 가지 대담한 상상을 보여준다:

“블랙홀은 정보의 묘지가 아니라,
차원 간 전달 장치일 수 있다.”

그가 살아나온 것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다.
정보의 이동과 보존이, 고차원의 공간에서 가능한 것이라면,
쿠퍼는 바로 그 물리적 실험의 _실행체_였던 셈이다.

 

 


PART 4. 호킹 복사와 양자역학 ― 블랙홀의 비밀

블랙홀은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존재.
하지만 정말 그 안은 '완전한 어둠'일까?

1974년,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한 가지 기묘한 사실을 계산으로 예측했다.

바로,

“블랙홀은 열을 갖고 있으며, 복사도 한다.”

이게 바로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다.
양자역학의 진공 상태에서는
입자와 반입자가 찰나의 순간에 생성되고 소멸한다.
이걸 **양자 요동(quantum fluctuation)**이라고 부른다.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는
이 입자쌍이 생성될 때,
한쪽은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한쪽은 바깥으로 튕겨 나갈 수 있다.

이때 바깥쪽 입자는 관측자에게
‘블랙홀에서 나오는 복사선’처럼 보인다.

즉,

블랙홀은 외부에 ‘정보’를 흘려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이 사실이라면,
블랙홀은 아주 오랜 시간 후 서서히 증발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호킹 복사는 완전히 랜덤한 복사로 예측된다.
즉, 원래 블랙홀 안에 어떤 정보가 있었는지는
복사만으로는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정보 보존의 법칙과 충돌한다.

그래서 이 이론은 여전히 뜨거운 논쟁 중이다:

  • 블랙홀은 정말로 정보를 파괴하는가?
  • 복사에 정보가 암호화되어 있는가?
  • 아니면, 아예 ‘블랙홀 내부’는 존재하지 않으며
    겉면(사건의 지평선)만이 정보를 저장하는가?

여기서 등장한 새로운 이론이 바로…


PART 5. 양자중력 이론의 모색 ― 루프, 끈, 그리고 정보

블랙홀의 정보 역설을 해결하려면
양자역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이게 바로

양자중력(Quantum Gravity)

현대 물리학의 성배라 불리는 이 이론은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깊은 층위에서
공간, 시간, 중력, 입자를 하나로 연결하려는 시도다.

대표적인 두 가지 접근이 있다:

  1. 끈이론(String Theory)
    • 모든 입자를 ‘진동하는 끈’으로 본다.
    • 블랙홀의 정보를 ‘브레인’(고차원 막)에 저장한다고 가정한다.
    • 고차원의 공간(5차원 이상)을 활용한다.
  2. 루프 양자중력(Loop Quantum Gravity)
    • 공간과 시간 자체가 이산적인 격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 블랙홀 중심에서 특이점이 생기지 않으며,
      그 내부가 ‘버블’처럼 휘어져 다른 우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쿠퍼가 경험한 테서랙트는
이러한 이론적 상상의 실현으로 볼 수 있다.

그가 양자 중력 데이터
중력을 통해 과거로 전달할 수 있었던 건,
이러한 고차원 양자중력적 경로가 실제로 열렸기 때문이라는
가상의 물리적 서사가 가능해진다.

이건 과학이 아직 닿지 못한 곳이지만,
물리학이 상상력을 빌려 문을 두드리는 자리다.

 

PART 6. 쿠퍼의 여정 ― 시간의 윤회와 인간의 기억

쿠퍼는 테서랙트에서 벗어나면서, 더 이상 한 인간의 시간 속에 있지 않았다. 그는 블랙홀이라는 무한 중력의 감옥 속에서 양자중력의 문을 통과한 유일한 존재가 된 것이다. 이건 단순한 공간적 이동이 아니다. 그는 시간의 작용에서 ‘자유로워진’ 존재가 되었다.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구조 안에서 그는 중력을 매개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딸,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잇는 교차점에 서게 된다. 이건 단지 아버지의 사랑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구현된 **인간 의식의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of intention)**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장면은 과학적 실재와 철학적 개념이 만나는 접점이다. 쿠퍼는 말 그대로 “우주의 의미를 잇는 끈”이 되어, 실존적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그가 머피의 방에서 건넨 메시지는, 단순히 중력 방정식의 해답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최후의 외침이며, 동시에 인류가 과학과 감성, 직관과 공식, 사랑과 중력을 통해 우주의 문을 열 수 있다는 상징적 표현이다.

PART 7. 과학 이후의 문 ― 재탄생과 새로운 현실

쿠퍼가 깨어나는 곳은 코퍼 스테이션(Coop Station). 그것은 더 이상 그가 알던 세계가 아니다. 시간은 흘렀고, 머피는 이미 늙었으며, 인류는 블랙홀의 해답을 넘어 우주로 향하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상대성 이론의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쿠퍼는 중력이 강한 영역에 머무르며, 외부보다 느린 시간 속에 있었기에 젊음을 간직한 채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장면은 마치 ‘예언자의 귀환’처럼 그려진다. 그는 이제 새로운 현실에서 과거의 인물이 되었고, 동시에 새로운 여정의 씨앗이 되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이제 전설이 되고, 과학은 신화로 재편된다.

PART 8. 미래를 향한 이정표 ― 블랙홀 이후의 세계

쿠퍼는 로봇 TARS와 함께, 브랜드 박사를 찾아 다시 우주로 떠난다. 그 길은 다시금 블랙홀을 향하고 있고,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영화는 여기서 열린 결말을 선택한다. 이건 단순히 이야기의 중단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 이야기, 혹은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의 서사를 독자에게 넘겨주는 장치다.

인터스텔라는 말한다:

“우리는 답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질문을 찾아가는 존재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끝이 아닌 시작이며, 블랙홀은 경계가 아닌 문이고, 시간은 족쇄가 아니라 연결고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