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회전의 문을 열다
공이 안 맞는 날이 있다.
몸은 분명 어제처럼 움직였고, 클럽도 같은 궤도를 그렸다.
하지만 임팩트는 어긋났고, 공은 고꾸라졌다.
J는 그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오늘은 중심 얘기를 해보죠.”
박사님의 첫 마디는 짧았다.
“중심이요?”
J가 되물었다.
“그래요, 몸의 회전 중심. 당신은 지금까지 스윙을 ‘팔’로 하고 있죠.
하지만 좋은 골퍼는 팔이 아니라, 축으로 칩니다.”
J는 잠시 멈춰 서서 생각했다.
“회전 중심이라… 그게 척추인가요?”
박사님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척추는 축이 될 수 없습니다. 그건 축 위에 놓인 관측 장비에 가까워요.
진짜 축은 몸 전체의 균형점이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당신의 양발이 지면에 만들어주는 평면 위의 무게 중심선입니다.”
J는 몸을 곧게 펴고 서 보았다.
발은 어깨너비로 벌어져 있었고, 무릎은 살짝 굽혀져 있었다.
그 상태에서 중심이란 개념을 떠올리려 하니 막막했다.
박사님은 손에 클럽 대신 플라스틱 봉을 들고 나왔다.
“이거, 당신 몸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는 봉의 아래쪽 1/3 지점을 손으로 잡고 회전시켰다.
봉은 아래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위쪽이 크게 휘돌았다.
“보이죠? 회전 중심은 낮고, 끝으로 갈수록 속도가 큽니다.
이건 아주 단순한 회전 운동의 원리예요. r이 클수록 v는 커진다.”
그는 다시 말했다.
“하지만 봉이 비틀리면 어떻게 될까요?”
박사님은 이번엔 봉을 비스듬히 들고 회전시켰다.
봉은 불규칙하게 떨리며 회전축을 잃었다.
“이게 바로 당신의 현재 스윙입니다.
척추와 머리가 축처럼 보이지만, 실제 중심이 흔들리면
팔과 클럽은 ‘공간을 잃은 위성’처럼 궤도를 잃게 되죠.”
J는 순간 멍해졌다.
‘내가 내 몸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중심이 흔들리고 있었던 건가?’
“오늘은 중심을 고정하고 회전하는 훈련만 합니다.
공 안 쳐도 돼요. 단지 돌아보세요. 당신의 몸이 어디를 기준으로 회전하는지.”
박사님의 그 말이, 이날 하루의 과제가 되었다.
J는 어드레스를 취하고 천천히 백스윙을 돌려보았다.
이전에는 그저 팔을 들어올렸던 것이,
이번에는 다리, 엉덩이, 옆구리, 어깨까지 함께 움직였다.
그는 중심이 발바닥 어디쯤에 있는 것을 느꼈다.
특히 오른발 안쪽에 하중이 모여드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이게… 축이라는 건가?’
돌아서고, 멈추고, 반대로 회전하고.
그는 클럽 없이 몸만 수십 번 돌렸다.
숨이 차고, 허벅지가 떨리고, 허리에 열이 났다.
박사님은 그걸 보고 말했다.
“회전은 근육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균형으로 하는 겁니다.
자기 몸이 무게 중심을 어떻게 이동시키는지 인식하는 순간,
당신의 축은 생기기 시작할 거예요.”
J는 눈을 감고 다시 회전했다.
머리로가 아니라, 감각으로 중심을 추적하려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그는 몸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PART 2. 회전의 수식, 균형의 감각
J는 자신의 회전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분석해보기 시작했다.
그는 연습장 한쪽 구석에서 스마트폰을 삼각대에 고정하고, 클럽 없이 몸만 회전하는 영상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했다.
오른쪽에서 본 모습, 뒤에서 본 모습,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뮬레이션 시점.
촬영을 멈추고 다시 영상을 재생하자, 거기엔 이상한 움직임이 보였다.
그는 오른쪽으로 백스윙을 하면서 골반이 너무 많이 뒤틀리고 있었고,
다운스윙에서도 하체가 들썩이며 회전 중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박사님이 다가와 영상 속 장면을 멈췄다.
“여기 보세요. 골반의 회전축이 왼쪽 다리 뒤로 밀렸죠?
이건 모멘트의 불균형입니다.”
“모멘트요?”
“네. 모멘트는 힘 × 거리입니다.
어떤 점을 기준으로 회전하려면, 그 점으로부터 떨어진 거리와 힘의 곱이 균형을 이뤄야 하죠.”
박사님은 바닥에 손가락으로 선을 그었다.
“여기 중심선이 있고요,
양쪽 발에서 이 선까지의 거리와, 거기에 작용하는 근육의 힘이 서로 같아야
회전이 중심에 고정됩니다.”
J는 무릎을 꿇고 박사님의 선을 따라 손으로 쓸어보았다.
그의 손끝에 중심이 생기는 듯했다.
“그럼 지금 제 스윙은…”
“당기고 밀고, 그저 ‘흔들리는 나무’죠.”
박사님이 조용히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중심을 고정할 수 있죠?”
박사님은 대답 대신 조그만 회전 의자 하나를 끌고 왔다.
그 위에 앉아, 두 손을 무릎에 올리고 말했다.
“앉아서, 발을 바닥에 두고. 이 상태에서 상체만 회전해보세요.”
J는 의자에 앉았다.
신기하게도, 의자 자체는 돌지 않았지만,
그의 몸이 중심을 기준으로 돌아갔다.
“지금 이게 순수 회전이에요.
힘은 코어에서 나오고, 축은 엉덩이와 골반 사이의 가상의 선.
이걸 연습하면 몸이 회전을 '힘으로'가 아니라 '구조로' 하게 됩니다.”
J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몸을 비틀었다.
이제야 조금씩 감이 오기 시작했다.
‘회전은 휘두르는 게 아니라, 돌아나가는 거구나.’
다시 찾는 균형점
며칠 후, J는 체육센터 지하의 작은 훈련실에서
박사님이 추천한 코어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 플랭크 1분 × 5세트
- 버드독 자세로 좌우 균형 잡기
- 메디슨 볼 회전 운동
- 그리고 가장 중요한 ‘슬로우 백스윙 정지 동작’
그는 자신이 지금껏 골프를 운동이라기보단 ‘기술’이라 생각해온 걸 후회했다.
땀은 주르륵 흘렀고, 허리는 쑤셨고, 오른쪽 옆구리는 뻐근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이전과는 다른 걸 느꼈다.
몸이 더 가벼워졌고, 중심은 조금 더 낮아졌다.
심지어는, 회전할 때 골반에서 ‘딸깍’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축이 고정되었다.
박사님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축은 찾아지는 게 아니라 **느껴지는 겁니다.
자기 몸의 무게중심이 일정한 반경 내에서 회전하는 그 느낌.
그걸 알게 되면, 스윙은 단순해집니다.”
PART 3. 회전 반경과 거리의 공식
그날, J는 처음으로 7번 아이언을 손에 쥐었다.
지금까지는 드라이버나 퍼터 같은 ‘가장 크거나 가장 작은’ 클럽만 써왔지만,
7번 아이언은 무게, 길이, 중심의 균형이 절묘했다.
박사님은 말했다.
“이제부터 거리 실험을 해볼 겁니다.
단, 힘으로 치는 게 아니라, 회전 반경을 조절해서요.”
J는 고개를 갸웃했다.
“회전 반경이요?”
박사님은 바닥에 원을 그렸다.
그 중심은 J의 배꼽 아래 어딘가였고,
원주를 따라 세 가지 선을 그었다.
“이건 당신의 회전 반경을 나타냅니다.
팔을 뻗은 정도, 몸통 회전의 범위, 그리고 척추 기울기에 따라
이 원의 크기가 바뀌죠.”
그는 계속 말했다.
“공식은 간단해요.
v = ωr
선속도는 각속도 × 반지름.
같은 속도로 회전하더라도, 반지름이 커지면 헤드 속도는 커집니다.”
J는 고개를 끄덕였다.
“즉, 팔을 최대한 뻗고, 몸통을 충분히 회전하면
더 큰 에너지가 공에 전달되는 거군요.”
“맞습니다. 단, 그 반경이 불안정하면 안 돼요.
‘같은 크기의 원’을 계속 그려야 합니다.”
박사님은 종이 한 장을 꺼내 J에게 건넸다.
그 위에는 일련의 궤도 곡선이 인쇄되어 있었다.
정상적인 스윙 궤도는 매끈한 원을 그리고 있었고,
잘못된 궤도는 출렁이며 왜곡된 곡선을 만들고 있었다.
“공은 정직합니다.
헤드가 원의 궤도를 유지하면 공도 직선으로 나가고,
궤도가 흔들리면 공도 좌우로 흔들립니다.”
J는 클럽을 잡고 천천히 백스윙을 올렸다.
이번엔 이전과 다르게, 오른팔을 더 뻗고
왼쪽 어깨를 턱 밑까지 깊이 집어넣었다.
‘궤도… 원형… 일정하게…’
그는 천천히 다운스윙을 돌렸다.
몸 전체가 하나의 중심을 기준으로 움직였다.
클럽은 마치 컴퍼스처럼 정확한 반경을 유지하며 움직였다.
툭!
공은 곧게 날아가, 타석 끝의 네트를 힘차게 맞췄다.
박사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바로 궤도의 정밀성입니다.
힘이 아니라, 회전의 품질이 공을 움직이죠.”
J는 땀을 닦으며 웃었다.
“마치 위성 궤도 같네요.
궤도가 정확할수록, 행성도 안정적으로 공전하니까요.”
“좋은 비유예요.
이제 당신은 회전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PART 4. ‘힘’이 아니라 ‘길이’로 치는 순간
공이 곧게 뻗었다.
박사님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J는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건 잠깐의 착각이었다.
J는 다음 샷에서 욕심을 부렸다.
‘조금만 더 세게 치면, 10야드는 더 나갈 수 있겠지.’
그는 백스윙을 더 크게 들었다.
그리고 다운스윙에서 무릎을 강하게 누르며 상체를 돌렸다.
팔에 힘이 들어갔고, 클럽은 휘둘리듯 내려왔다.
툭.
공은 날긴 날았다.
하지만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슬라이스 궤적을 그리더니,
타석 오른쪽 끝에 있는 구조물에 맞고 튀었다.
“흠.”
박사님은 클립보드에 뭔가를 적더니 말했다.
“지금 그건 ‘힘’으로 친 스윙이에요.”
J는 머쓱하게 웃었다.
“좀 욕심을 부렸네요.”
박사님은 고개를 저었다.
“욕심이 문제가 아니라, 궤도의 붕괴가 문제죠.”
그는 곧바로 디스플레이에 J의 스윙을 리플레이로 재생했다.
느린 속도로 본 장면에서, 클럽헤드는 백스윙 정점보다 15cm 더 벌어졌고,
다운스윙 시엔 손목이 지나치게 빨리 풀리며 궤도 바깥으로 밀려났다.
“이건 r의 불안정입니다.
회전 반경이 일정하지 않으면, 에너지가 흩어져요.
v = ωr에서 r이 흔들리면, v는 커졌다 줄었다를 반복하죠.”
J는 고개를 끄덕였다.
“궤도의 안정성이 곧 거리의 안정성이네요.”
“정확히 말하면, 골프는 ‘에너지 전달의 구조물’을 만드는 일입니다.
당신은 회전 반경이라는 ‘길이’를 조절해야지,
‘힘’이라는 변수를 넣으면 시스템이 흔들리죠.”
박사님은 손에 들고 있던 실험용 줄자와 진자 장치를 보여주었다.
“이건 물리학 수업에서 쓰는 진자 실험기죠?
보세요.”
그는 진자줄을 짧게 줄이고 흔들었다.
빠르게 왕복 운동을 했다.
그 다음 줄을 길게 하고 같은 힘으로 흔들자,
운동은 더 느리지만, 진자가 움직이는 거리(진폭)는 더 길어졌다.
“골프 스윙은 이 진자처럼,
줄(=팔과 클럽)이 길어질수록 큰 운동을 하지만,
그만큼 더 정밀하게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길이’로 치는 스윙입니다.”
J는 조용히 클럽을 들고 다시 어드레스를 취했다.
이번엔 욕심을 버리고, 그저 자연스러운 궤도 유지에 집중했다.
툭.
공은 다시 곧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날았다.
비거리는 앞선 것과 비슷했지만, 이번엔 충격이 없었고
공은 거의 완벽한 직선을 그렸다.
박사님은 웃으며 말했다.
“이제 당신은 길이로 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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